공영팔
孔永八미상 ~ 192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청년단연합회 벽동청년단
포상 정보
- · 애국장(201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0) 출생 시기는 알 수 없고, 평안북도 벽동(碧潼) 출신이다. 1920년 당시 대한민국임시정부 계열의 독립운동 단체인 대한청년단연합회(大韓靑年團聯合會) 벽동청년단에 소속되어 항일 활동을 전개하였다. 대한청년단연합회의 모체가 된 대한청년단은 1919년 3·1운동 이후 4월부터 국내에서 활동하던 청년들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다. 이들은 대체로 근대적인 교육을 받은 인물들이다. 이 사실을 통해 근대 교육을 받은 청년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본래 대한청년단의 청년들은 임시정부의 정책과 법령을 국내에 선전하고, 『독립신문』과 각종 문서를 배포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1919년 8월부터 10월에 걸쳐 총재인 안병찬(安秉瓚)과 단원들이 대거 체포되면서 활동이 위축되고 조직이 재편되어 대한청년단연합회가 새로이 결성되었다. 1919년 11월 말에 다시 결성된 대한청년단연합회는 1920년 4월 남만주의 안둥성(安東省) 관뎬현(寬甸縣) 향로구(香爐溝)를 거점으로 삼고 안병찬이 다시 총재가 되었다. 아울러 국내의 벽동군과 위원군(渭原郡) 등에 청년단을 설치하면서 보다 적극적인 활동을 이어갔다. 이 무렵에 벽동군 청년단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주로 임시정부의 정보를 전하고, 국내 항일 세력을 포섭해 연계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짐작된다. 당시 임시정부 안동교통국과 연통부가 일본 경찰 감시망에 노출되면서 대한청년단연합회의 연락망과 조직이 이를 대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한청년단연합회 교통부장인 오학수(吳學洙)를 통해 거점인 안동으로부터 법령과 정보를 담은 선전문과 신문 등이 국내의 평양, 황해도, 서울 등지로 전달되었다. 임시정부는 이를 통해 다시 연락망을 복원하는 한편, 임시정부의 국내 연락과 의용대 조직, 전쟁 준비를 위한 무기 구입까지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한청년단연합회 활동은 점차 그 조직망과 단원들의 실체가 드러나게 되었고, 일본 경찰의 추격망이 좁혀오게 되었다. 그 결과 5월 16일 관뎬현 홍통구(弘通溝)에서 주요 인사들이 체포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무렵인 1920년 5월 15일 벽동청년단의 수십 명의 단원과 함께 벽동헌병분견소(碧潼憲兵分遣所)에서 파견된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었다. 체포된 후 동지들과 함께 헌병대 숙직실에서 취조를 당하던 중 탈출을 시도하였다. 당직 중인 헌병이 깊이 잠든 틈을 타 그 검을 탈취한 후 잠든 헌병을 살해하였다. 이후 동료 일부는 도망치는 데 성공하였으나 도주 과정에서 일본 헌병에게 잡힌 후 그 자리에서 피살되어 순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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