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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공찬

金公贊

1884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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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공찬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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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순창(淳昌)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순창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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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신보현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8)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8) 1884년경 전라북도 순창군(淳昌郡) 하치동면(下置東面) 옥산리(玉山里, 현 순창군 쌍치면 옥산리)에서 태어났다. 1909년 당시 26세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07년 6월의 헤이그특사 사건 이후 일제의 압력으로 광무황제(光武皇帝, 고종)가 퇴위하고 이어서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으로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해산되자 군인들의 무장봉기를 시작으로 정미의병의 항쟁이 전개되었다. 정미의병 항쟁 당시 동향인 유공술(柳公述)·허판동(許判同) 등과 함께 신보현(申甫鉉) 의병부대에 가입하여 순창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신보현은 1908년 5월 이후 순창·고부·등지에서 순창수비대와 교전하는 등 1909년 12월 체포될 때까지 활동하였다. 유공술 등과 함께 1909년 (음)2월경 전북 순창과 태인·고부(古阜) 일대에서 의병 항쟁을 위한 군자금 조달 활동을 벌였다. 같은 해 9월 4일 순창군 하치등면 피노리에서 고부경찰서의 경부(警部) 정인하(鄭寅夏)가 인솔한 순사대에 유공술·허원칠(許元七)과 함께 체포되었다. 이후 일본 검사 입회 심리를 거쳐 1909년 10월 6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5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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