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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춘

金光春

1877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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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광춘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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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김제(金堤)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김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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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1877년경 전라북도 김제군(金堤郡) 대촌면(代村面) 여초리(汝草里, 현 김제시 연정동 일대)에서 태어났다. 1909년 활동 당시 32세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09년 8월 27일 동료 의병 김찬경(金贊京)·공사일(孔士一)과 함께 전북 김제군 서포면(西浦面) 원기리(院基里)의 김명선(金明先)에게 자신들을 전해산(全海山)의 부하라고 밝히고 총기(銃器) 제공을 요구하였다. 전해산은 전북 임실(任實) 출신의 의병장으로 1908년 7월 29일 의병부대를 조직하고 1909년 2월까지 전남 영광(靈光)·나주(羅州)·광주(光州) 등지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유격전을 수행하며 의병 활동을 하다가 1909년 5월경 부대를 해산하였다. 김명선으로부터 총기류 획득에 실패하자 의복 등을 취하였다. 김명선을 데리고 나와 인근 해창리(海倉里) 주막에 들러 식사를 하고 다시 만경군(萬頃郡) 남이면(南二面) 양지리(良池里, 현 김제시 성덕면 석동리 일대)에 있는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재차 총기와 군자금 제공을 요구하였다. 그러던 차에 순사들에게 체포되어 재판에 붙여졌다. 1909년 9월 20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7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박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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