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호선
權灝善미상 ~ 1897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호좌의진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관련 사건
- · 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충청북도 청풍(淸風) 출신으로 을미의병 시기 유인석(柳麟錫)이 이끄는 호좌의진(湖左義陣)의 일원으로 의병 항쟁을 전개하였다. 1895년 일제는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단발령을 공포하여 한국의 국권을 침해하고 식민지화를 위한 준비 단계에 들어갔다. 이러한 상황을 맞아 유인석은 ‘도해(渡海)’를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문인 안승우(安承禹)와 이춘영(李春永) 등이 의병을 일으켜서 지평의진(砥平義陣)을 결성한 뒤 단양전투 이후 영월로 패퇴하자 요동행을 포기하고 거의하기로 결심하였다. 1896년 1월 유인석은 제자들을 영월로 집결시켰다. 그리고 「격고팔도열읍(檄告八道列邑)」을 띄워 거의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고 의병부대의 편제를 정비하였다. 이때 총대장으로 추대된 유인석은 이춘영을 중군장에, 안승우를 전군장에, 신지수(申芝秀)를 후군장에 임명하였다. 이어 합류한 의병부대를 이끌고 제천으로 근거지를 옮겨 일제가 시행한 단발을 강요하던 친일 관리 단양군수 권숙(權潚)과 청풍군수 서상기(徐相耆)를 처단하였다. 유인석 의병부대는 1896년 2월 16일 충주성을 공격하였다. 충주는 교통의 중심지이자 군사적 요충지로 이를 선점하여 거점으로 삼아 항쟁을 전개하고자 하였다. 다음 날인 2월 17일 부대는 충주성을 함락하여 큰 피해 없이 입성하였다. 1896년 (음)2월 1일 영춘에서 포병(砲兵) 16명을 모아서 유인석 의병부대에 합세하였다. 이러한 지원에 힘입어 부대는 활기를 띠면서 제천을 중심으로 의병 항쟁을 계속하였다. 충주성전투에도 참여하였다. 후군장 신지수·조달승(趙達承)과 긴밀히 연락하여 미리 군대를 제천에서 우회하여 밤중에 이동시켜 충주 부근 산속에 숨겨 두며 적의 동태를 탐지하다가, 본진이 충주를 정면에서 공격할 때 후면에서 공성(攻城)하였다. 이 과정에서 호좌의진 종사 이조승(李肇承)의 형인 이주승(李胄承)의 집에 머물면서 지원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지원과 활약에도 관군과 일본군의 총공세에 밀린 유인석이 의병을 다시 모아 항쟁을 계속하기 위해 요동행을 결정하며 서행 길에 오르면서 을미의병이 마무리되었다. 이때 유인석을 보좌하면서 행렬을 따라 만주로 이동하였다. 이후의 행적이나 정확한 사망 연월일은 알려진 바 없다. 다만 충주에서 함께 활약하던 조달승이 1897년 이조승에게 보낸 서한에서 “천신만고 끝에 이역에까지 가서 옛 전형을 보전하여 뒷일을 대비하려다가 일조에 소인에게 해침을 당했으니 놀랍고 한스러운 마음을 어떻게 다 말할 수 있습니까”라며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한 점에 미루어 보아 1897년 간도에서 의병 항쟁을 계속하기 위해 항일 근거지를 마련하는 등의 준비를 하다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해 순국한 것을 알 수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박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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