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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在玉

趙在玉

1900. 11. 1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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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趙在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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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강화(江華)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강화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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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8)

관련 사건

  • · 강화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8) 1900년 11월 1일 경기도 강화군(江華郡, 현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吉祥面) 선두리(船頭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면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생활하였다. 강화도(江華島)에서는 1919년 3월 18일 강화읍(江華邑) 장터에서 약 10,000명이 참여한 대규모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이 만세운동은 길상면 온수리(溫水里)의 유봉진(劉鳳鎭), 선두리의 황도문(黃道文)·황유부(黃有富)·염성오(廉成五)·장윤백(張允伯) 등 감리교계의 기독교 인사들이 주도하였다. 이들은 3월 1일 이래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전개되고 있음을 파악하고, 이에 적극 찬성하여 강화도의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유봉진 등은 3월 11일 황유부의 집에 모여 강화도의 만세운동 거사일을 강화읍 장터의 장날인 3월 18일로 결정하고, 주민들에게 배포할 독립선언서, 「강화 인민에게」, 『국민회보』 등의 인쇄 및 만세시위에서 주민들과 함께 부를 「독립가」를 만드는 등 구체적으로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전단의 제작은 황도문이 담당하였고, 인쇄물의 배포 책임은 염성오가 담당하였다. 같은 향리 출신으로 같은 교회에서 활동했던 염성오로부터 강화도의 만세운동 준비에 대한 상황을 전해 듣고, 즉시 동의하여 만세운동 준비에 적극적으로 결합하였다. 각종 인쇄물의 지역 배포를 담당하여 3월 14일 오후 9시 경 염성오의 집에서 독립선언서, 「독립가」, 「강화 인민에게」, 『국민회보』 등을 수령하여 다음날인 15일 아침 길직리(吉稷里) 박영칠(朴永七)과 장흥환(張興煥), 온수리의 전동규(全東奎) 등에게 배포하였다. 만세운동의 거사일인 3월 18일 강화읍의 윗 장터, 아랫 장터로 사전 연락을 통해 만세운동에 공감하여 만세시위에 참여하려는 주민들이 모이기 시작하였다. 장터에 모인 주민들의 숫자는 무려 10,000여 명의 규모였다. 오후 2시경 유희철(劉熙哲)·황일남(黃日男)·황윤실(黃允實) 등의 결사대원들이 먼저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며 만세시위를 선도하였다. 이에 주민들도 일제히 ‘조선독립만세’를 외쳐 호응하면서 대규모 만세시위가 시작되었다. 유봉진 등의 지휘에 따라 만세시위대는 장터에서 강화향교(江華鄕校)를 거쳐 군청으로 진출하였다. 이와 같은 대규모 만세시위대의 요구에 의해 군수 이봉종(李鳳鍾)도 ‘조선독립만세’를 외쳤고, 일제 경찰은 유희철 등 만세시위에 초기에 체포한 주도자들을 석방할 수밖에 없었다. 이날 강화읍 장터 시위는 밤늦게까지 계속되다가 자진 해산하였다. 이날의 만세시위 이후 강화도로 출동한 일제 경찰과 군대의 대대적인 만세시위 참여자 조사, 색출 과정에서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12월 1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아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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