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鎭肅
鄭鎭肅1912. 11. 5 ~ 2008. 8. 2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7)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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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7) 1912년 11월 5일 충청남도 천안군(天安郡) 북면(北面) 운곡리(雲谷里)에서 정순모(鄭順謨)와 풍양 조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동래(東萊)이고, 호는 은석(隱石)이다. 일제 말기에는 수곡문일(水谷文一)이라는 창씨명을 쓰기도 하였다. 어려서 외가인 경기도 수원군(水原郡, 현 화성시) 매송면(梅松面) 야목리(野牧里)에서 성장하다가, 1921년 아들이 없던 백부 정현모(鄭顯謨)의 양자로 들어갔다. 1921년 목천공립보통학교를 다니다가 화성 무천소학교로 전학하여 1929년 졸업하고, 1930년에는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하였다. 1934년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보성전문학교를 다니다가 건강 악화로 자퇴하였다. 1936년 동일은행(東一銀行)에 입사하여 서대문지점에서 근무하였다. 이후 동일은행이 한성은행(漢城銀行)과 합병하여 신설된 조흥은행(朝興銀行) 종로지점에서 일하였다. 일제는 1941년 태평양전쟁 이후 점차 전세가 불리해져감에 따라 노골적인 억압과 동원정책들을 강행하였다. 당시 한국인들은 비밀리에 내부적으로 독립을 준비하면서 1944~1945년 일제의 패망이 가시화되자 이와 관련된 발언 등으로 견해를 표출하였다. 1944년 10월 23일 오전 종로지점에서 함께 근무하던 동료 하풍상(河豊尙)과 김용왕(金溶汪)에게 사이판에서 돌아온 사람에게 들었다며 일본군 옥쇄(玉碎)와 관련하여 “일본군 사령관이 사이판에서 한인을 포함한 일본인 모두를 집합시켜 전부 기관총으로 사살하였다”고 말하였다. 이 일로 용산헌병대에 붙잡혀 군사(軍事)에 관한 조언비어(造言飛語)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풀려난 후 1945년 1월 2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육해군형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수원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1945년 을유문화사(乙酉文化社) 창립에 참여하여 한글 큰사전(전 6권) 발행에 참여하였고, 이후 대표이사를 지냈다. 1961년 국정교과서주식회사 사장으로 취임하였고, 1973년까지 세 번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이후 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중앙박물관회 회장, 한국박물관회 회장, 휘문의숙 이사, 한국출판금고 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1961년 서울시문화상, 1968년 대통령 표창장, 1969년 문교부장관 표창장, 1970년 국민훈장 동백장, 1997년 문화체육부 금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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