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根益
崔根益미상 ~ 1908. 12. 19
관련 단체
- · 김상태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03)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3) 자료의 한계로 정확한 출생시기와 출신지 등은 알 수 없다. 강원도 양구군(楊口郡) 수입면(水入面) 수귀동(守貴洞)에 거주하였다. 김상태(金尙台)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의병 지원활동을 전개하였다. 1908년 김상태 의병장의 잠복 활동 등을 지원하였다. 김상태는 충청북도 단양(丹陽) 출신으로 일찍이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항의하여 의병을 일으키고, 이강년(李康秊) 의병부대에서 중군장(中軍將)으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와 대한제국 군대의 강제 해산 이후 다시 이강년과 의병을 일으킨 후, 충북·경북·강원 일대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김상태는 1908년 6월 이강년이 체포되고 10월에 교수형을 당하자, 지휘권을 이어받아 잔여 의병들을 이끌고 항일활동을 지속하였다. 1908년경 김상태 의병부대에 투신하였고, 주로 의병장의 잠복을 돕고 정보를 제공하는 등의 지원활동을 담당하였다. 같은 해 8~9월경에는 단발을 하고 자택을 교회당으로 개조하여, 김상태에게 은신처를 제공하면서 권원석(權元石)과 함께 의병장의 활동을 지원하였다. 일제 경찰은 “김상태와 의형제를 맺을 만큼 신뢰가 돈독하며, 신체가 크고 담력이 좋다고 자부하고 있다”고 파악하고 있었다. 1908년 11월 8일 김상태가 수귀동에 잠복 중이라는 첩보를 입수한 금성수비대의 급습을 받았지만, 김상태·권원석 등과 함께 사전에 이를 파악하고 피신하였다. 이때 수색과정을 통해 교회당 장롱에 숨겨둔 김상태의 옷가지와 서류 등을 발견한 일제 수비대에게 의병장의 은닉활동을 돕고 있다는 사실이 발각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을 모르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생활하다가, 같은 해 12월 19일 이를 알아차린 금성수비대로부터 다시 급습을 당하고 붙잡혔다. 이 과정에서 일제 수비대에게 완강히 저항하다가 권원석과 더불어 총격을 받고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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