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聖三
趙聖三1875 ~ 1908. 3. 17
포상 정보
- · 애국장(200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경북 풍기)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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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05) 자료의 한계로 정확한 출생시기와 출신지에 대해 알려진 내용은 없다. 기록에 따르면 1875년생으로 추정된다. 1908년 작성된 일제 보고서에는 충청북도 단양군(丹陽郡) 남면(南面) 출신인 민아무개·류아무개 의병장 휘하에서 활동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908년 경상북도 풍기군(豐基郡) 일대에서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같은 해 풍기 일대에서는 이강년(李康秊) 의병부대가 유격전 등을 전개하면서 활동하고 있었다. 특히 이강년 의병장은 변학기(邊鶴基)·성익현(成益顯)·김상태(金相台)·정경태(鄭敬泰)·백남규(白南奎)·정연철(鄭連哲) 등과 연합하여 대규모 의병부대를 지휘하며, 봉화(奉化)의 서벽(西壁) 전투·내성(乃城) 전투·안동(安東)의 재산(才山) 전투 등에서 큰 전과를 올렸다. 당시 활동하던 의병부대를 특정할 수 없지만, 풍기군 상리면(上里面)과 하리면(下里面) 일대에서 10여 명의 의병들과 함께 일본군을 정찰하고 야간에는 일본군 수비대와 전투를 벌이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같은 해 3월 16일 오전 11시경 일진회(一進會) 회원의 밀고를 받고 출동한 일본군 수비대로부터 하리면 양전동(良田洞)에서 숙영하고 있다가 기습을 받았다. 조봉술(趙鳳述) 등과 함께 일본군 수비대와 교전하였지만, 결국 붙잡혀 심문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경북 문경(聞慶)의 명봉사(鳴鳳寺)를 지나 온 것을 확인한 일본군 수비대는 의병들을 토벌하기 위해 이 지역에 대한 수색을 확대하였다. 하지만 3월 17일 동료 의병들이 상리면 일대 고지대에서 매복하고 있다가 일본군 수비대가 등장하자 지형의 유리함을 이용하여 역습하였다. 일본군 수비대가 의병부대와의 전투로 혼란한 틈을 타서 탈출을 시도하였지만, 결국 총격에 맞아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배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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