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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응남

高應南

1883 ~ 1920.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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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고응남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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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혼춘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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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정확한 출생 일자는 알 수 없지만 1920년 당시 38세였던 점으로 미루어 1883년생일 것으로 추정된다. 출신지는 자료의 한계로 알 수 없다. 중국의 지린성(吉林省) 훈춘현(琿春縣)에 거주하며 농업에 종사하였다. 1920년 10월 17일 일본의 조선주둔군(朝鮮駐屯軍) 19사단 병력이 마적단(馬賊團) 소탕을 빙자해 벌인 만주 거주 한인 학살 과정에서 순국하였다. 1920년 10월 일제는 1919년 3·1운동 이후 만주 지역에서 활발해진 한국독립군의 항일 무장투쟁을 뿌리 뽑는다는 명분으로 만주 침공의 야욕을 드러냈다. 중국 영토지만 한국독립군의 주요 활동 무대이자 한인이 거주하는 간도 지방에 일본군을 파병하고자 하였다. 파병을 위해서는 마땅한 구실이 필요하였고, 결국 중국 마적을 이용하기로 하였다. 중국 마적인 장하오(張江好)가 이끄는 400여 명의 마적을 매수한 일본은 간도 지역인 훈춘에 있는 일본 총영사관을 공격하도록 하였다. 이를 일컬어 ‘훈춘사건’ 혹은 ‘훈춘참변’이라고 한다. 이 사건 이후 간도 병력 파견을 공식화한 일본군은 한국 주둔 제19사단과 20사단, 시베리아 출병군 11·13·14사단, 만주 파견군 등을 포함해 2만 명의 대병력을 투입하였다. 일본군은 마적 토벌이 아닌 독립군 토벌 작전을 2단계로 나누어 전개하였으나 독립군 섬멸은 불가능하였다. 독립군 대부분이 안전지대인 연해주로 피신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거센 항의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10월 16일을 기해 독립군 소탕 작전을 개시하였다. 사실상 일제의 만주 침략과 재만 한인 사회에 대한 학살이 시작된 것이다. 일본군은 일명 ‘초토화 작전’이라는 미명 아래 무고한 재만 한인을 무차별 학살하였다. 10월 5일부터 11월 23일까지 일본군에 의해 학살된 한인은 훈춘현에서 242명에 달하였다. 이 무렵인 1920년 10월 17일 옌지현(延吉縣) 삼도구(三道溝)와 이도구(二道溝) 중앙에 있는 산중에서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취조를 당하였다. 이때 재향군인에 대한 취조를 받던 중에 박원익(朴元益)·박원모(朴元模)·남용순(南容淳)·최이룡(崔利龍) 등과 함께 산중에서 도주를 시도하였다. 하지만 일본군에게 동료 4명과 함께 그 자리에서 피살되어 순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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