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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泰璸

趙泰璸

1894 ~ 192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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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趙泰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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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평산(平山)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황해도 평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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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독립단
  • · 대한통의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황해도 평산군(平山郡)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94년생으로 추정된다. 1910년 경술국치 후 김명봉(金鳴鳳)과 함께 의병장 이진룡(李鎭龍)·조맹선(趙孟善) 등을 따라 서간도(西間島)로 넘어갔다. 조맹선 의병장은 집안의 삼촌이었다. 만주 지역에서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에 가입하고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대한독립단은 1919년 4월 15일 류허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 서구(西溝) 대화사(大花斜)에서 의병출신 인사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단체이다. 류허현에 본부를 두고 만주와 한국 내에 많은 지단(支團)과 지부(支部)를 설치해 이를 기반으로 군자금을 모집하고 일제를 상대로 한 항일무장투쟁을 펼쳤다. 이때 대한독립단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한편 당시 서북간도에는 만세운동을 계기로 대한독립단뿐만 아니라 여러 독립군단이 성립되었다. 이들 독립군단은 빠른 시간에 무장체계를 갖추고 유격대를 편성해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나들며 항일무장활동을 펼쳤다. 이에 일제는 1920년 10월 약 2만명의 일본군을 서북간도 독립군기지를 향해 침략시켰다. 첩보를 통해 사전에 알게 된 독립군 주력부대는 북만주를 거쳐 소련의 연해주로 이동해 피해를 줄였다. 일본군이 물러간 후 기지로 돌아와 폐허가 된 병영과 한인사회 재건을 위해 노력하였다. 효율적인 재건을 위해 힘을 합하기로 합의하고 독립군 단체의 통합운동을 벌였다. 그 결과 1922년 8월 남만주의 17개 독립운동단체를 통합해 대한통의부를 결성하였다. 대한통의부는 김동삼(金東三)을 총장, 채상덕(蔡相德)을 부총장으로 한 지휘부를 만들고, 그 아래 민사·재무·학무·교섭·권업·군사·참모·법무 등의 행정부서를 만들어 이주한인사회의 재건과 자치활동을 지원하고 이끌었다. 김창환(金昌煥)을 사령관으로 선임하였으며, 5개 중대와 유격중대 및 헌병대를 편성한 의용군을 조직하였다. 이때 의용군 제5중대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1923년 (음)10월경 한국인이면서 일제의 밀정 노릇을 하는 홍빈(洪濱)이란 자를 붙잡아 와 그의 죄질을 물으며 취조하였다. 이 시기 5중대의 서기(書記)를 맡고 있었으나, 일반적인 행정업무를 수행하는 직책이 아니라 중대장을 보좌하는 부관으로 활동하였다. 홍빈을 취조한 후 본부의 사판소(査判所)로 보내 태(笞) 150도(度)에 처하도록 하였다. 같은 해 12월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로부터 독립공채를 전달받아 류허현·싱징현(興京縣) 등의 한인사회를 돌면서 매매하여 독립자금을 조성하였다. 1924년 3월경에는 펑톈(奉天)에 머무르며 조선일보 지국장으로 근무한 신명배(申明环)와 협조해 폭탄 7개와 자전거 1대를 확보해 5중대의 군사력을 증강시켰다. 1924년 초부터는 싱징현 황대가구(黃帶家溝)에 근거지를 둔 5중대의 서기로 활동하며, 같은 현 왕칭문(旺淸門)에 위치한 본부의 학무부 교육과 위원을 맡아 활동하였다. 표면적으로는 이같이 분주하게 대한통의부의 업무를 수행했지만, 이면으로는 의용군 1중대장인 채찬(蔡燦)을 비롯해 김원상(金元常)·박응백(朴應伯)·조능도(趙能道) 등과 대한통의부를 이탈해 오직 항일무장투쟁에 전념하는 단체를 만드는 일을 추진하였다. 김원상 등은 대한통의부가 이주한인사회를 관리하는 자치활동에 치중하다보니 조국 광복을 위한 독립전쟁 수행이 소홀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러한 무장투쟁 제일주의를 실천하기 위해 채찬·김원상 등과 1923년 말 상하이(上海)로 가 임시정부 인사들과 그 노선을 실천할 방법을 논의하였다. 서간도로 돌아와 1924년 상반기 압록강과 접해 있는 지안현(輯安縣)을 근거지로 해 임시정부 산하의 직속군대임을 천명한 육군주만참의부(陸軍駐滿參議部, 이하 참의부)를 성립시켰다. 참의부가 성립될 당시 처음 참여한 세력은 대한통의부 의용군 제1·2·3 중대와 유격중대 및 독립소대였다. 의용군 중 가장 큰 세력인 5중대도 참여할 뜻을 분명히 밝혔으나, 대한통의부 잔류세력의 적극적인 만류와 방해로 최초 가담이 어려웠다. 대한통의부 잔류세력은 5중대를 참의부로 보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중대장 김명봉을 비롯한 중대내 간부들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 같은 대립은 결국 내홍이 되어, 잔류파인 오동진(吳東振)·문학빈(文學彬) 세력에게 김명봉·곽동일(郭東一) 등과 함께 붙잡혀 싱징현 이도구(二道溝)에 있는 대한통의부 본부 감옥에 감금되었다. 끝내 뜻을 굽히지 않아 1924년 7월 중대장 김명봉과 함께 총을 맞고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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