曺秉一
曺秉一1887 ~ 1920. 11. 26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국민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6)
관련 사건
- · 훈춘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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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6) 충청북도 중원군(中原郡, 현 충주시) 출신이다. 기록에 따르면 1887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으로 한자를 달리한 조병일(曺秉日)을 썼다. 만주로 이주한 이후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에 참여하여 약상(藥商)으로 활동하며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대한국민회는 조선독립기성회(朝鮮獨立期成會)가 1919년 4월 상하이(上海)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조직되자 그 명칭을 대한국민회로 개칭한 단체이다. 임시정부의 승인을 얻어 북간도에 대한 통일기관이자 임시정부의 직속계통임을 자임하였다. 주요 간부는 회장 구춘선, 부회장 강구우였고, 옌지(延吉)·허룽(和龍)·왕칭(汪淸) 3개현을 5개 구역으로 나누어 53개 지회를 두고 있었다. 1920년 1월경에는 80여 지회로 조직이 확대되었다. 지방지회는 북간도 지역의 주요한 민족운동 지도자들이 간부로 활동하였는데, 이때 대한국민회 지방지회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1921년 6월 일제 관헌의 조사에 따르면, 당시 대한국민회는 중앙총부를 중심으로 지방지회는 제1중부지방회, 동부지방회, 서부지방회 등으로 나뉘었다. 제1중부지방회는 산하에 모두 17구(區) 지회가 있었는데, 이때 팔도구(八道溝) 남양촌(南陽村) 소재의 제8구지회에 소속되어 경호구장(警護區長)으로 활동하였다. 제8구지회 해산 뒤에는 제10구지회 경호구장을 역임하였다. 한편, 1920년 일본군이 ‘훈춘사건(琿春事件)’을 빌미로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여 같은 해 10월 간도지역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독립군은 물론 그들의 지지기반이기도 했던 만주지역 한인사회 역시 공격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항일활동을 지속하던 중, 그해 11월 26일 옌지현 양지촌(陽地村)에서 일본군에게 붙잡혀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임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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