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趙昌善

趙昌善

1879. 6. 22 ~ 1923. 6. 11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趙昌善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황해 평산(平山)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황해도 평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군사주비단

포상 정보

  • · 독립장(1968)

관련 사건

  • · 친일 밀정 처단
  • · 군자금 모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독립장(1968) 1879년 6월 22일 황해도 평산군(平山郡) 고지면(古之面) 봉암리(鳳岩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한양(漢陽)이며, 이명은 조무선(趙武善), 정해천(鄭海天)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 군사주비단(軍事籌備團)의 황해도지단에서 활동하였다. 군사주비단은 임시정부 군무부 직속의 군사단체였다. 임시정부가 1919년 12월 18일 ‘임시군사주비단제’를 발포하고, 1920년 초 신년을 ‘독립전쟁의 해’로 시정방침을 정한 뒤 국내에서의 군사활동을 위해 대한독립의용단(大韓獨立義勇團)과 함께 군사주비단이 조직되었다. 군사주비단은 본부와 지부로 구성되었다. 본부는 국내 각 도 및 국외 주요 한인거류지에 설치하였고, 지부는 본부의 관할 아래 연단(聯團), 소단(小團), 분단(分團)으로 구성되었다. 군사주비단은 임시정부의 군사적 작전 수행을 지원하기 위해 군자금 수합과 친일파 처단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0년 (음)7월 하순 황해도 평산에서 군사주비단 황해도지단의 대단장 민승현(閔昇顯)과 소단장 유상열(柳相烈)의 권유로 입단하였다. 같은 해 11월 하순 민승현과 그 동지 주용환(朱龍煥)·이수영(李壽永)의 지시로 임시정부의 포고문을 살포하여 독립의지를 고취하고 친일파의 경각심을 높였다. 1921년 3월 11일 밤 평산군 마산면(馬山面) 입암리(立岩里)에서 대단장 유상렬의 주도로 서의배(徐義培)·민치영(閔致榮) 등과 함께 친일 밀정을 처단하였다. 같은 해 4~5월 이후 임시정부에서 보내온 공채증권과 ‘군자금 제공명령 통지서’ 등을 재산가에게 보내어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음)10월 4일에는 서의배·민치영과 함께 평산군 세곡면(細谷面) 군동리(群洞里)의 양재성(梁在星)으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5,000여 원을 모집하여 임시정부에 전달하였다. 1921년 12월 2일 오전 6시경 평산군 세곡면 수동리(修洞里) 이영운(李永雲)의 집에서 기습한 일제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며 대항하다가 부상을 입고 붙잡혔다. 1922년 7월 해주지방법원과 1923년 1월 30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사형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5월 10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었다. 그해 6월 11일 평양형무소에서 형 집행으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김용달⋮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