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乃憲
趙乃憲1886. 10. 21 ~ 1932. 6. 9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민국 임시정부
포상 정보
- · 애족장(2008)
관련 사건
- · 중국지폐위조단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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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8) 1886년 10월 21일 전라북도 김제군(金提郡) 홍산면(洪山面, 현 부량면과 상포면) 상포리(上浦里)에서 조방창(趙方昌)과 진주 강씨의 독자로 태어났다. 본관은 김제(金堤)이며, 호는 야국(野菊)이다. 활동 당시에는 경성부 죽첨정(현 서대문구 충정로)에 거주하였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할 목적으로 독립운동 자금 마련 활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6월 말경 인천(仁川)에서 박정립(朴正立)으로부터 독립운동 자금 유통을 목적으로 중국 지린성(吉林省)에서 사용되고 있는 ‘영형관첩(永衡官帖) 50조(弔)’ 지폐 위조에 대한 출자 요청을 받았다. 그리고 이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후 정태영(鄭泰英) 등이 안우선(安祐璿)의 집 지하실에 설치한 위폐 제조 설비를 직접 확인하고 자금으로 300원을 지원하였다. 이어서 하일청(河一淸)에게도 지폐 제조에 대한 사정을 말하고 출자를 권유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까지 정태영 등과 함께 동판·석판·석판기계 등 각종 설비를 갖추고 지폐 50,000여 장을 인쇄하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20년 7월 3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등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그해 11월 1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옥고를 겪다가 1922년 5월 11일 풀려났다. 1924년 2월 일본군 헌병주재소 간부들을 비난하는 내용의 서찰을 옮겨 쓴 일로 군산경찰서에 붙잡혔다가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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