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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弼善

趙弼善

1888. 6. 22 ~ 1965.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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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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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양주(楊州)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양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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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양주군 백석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88년 6월 22일 경기도 양주군(楊州郡) 백석면(白石面) 연곡리(連谷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3월 27일과 28일 양주군 백석면 연곡리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양주군에서는 1919년 3월 27일 밤 10시경 백석면 연곡리에서 만세시위가 시작되었는데, 이 시위에 참여하였다. 연곡리 만세시위는 구장 안종규(安鍾奎)와 그의 형 안종태(安鍾台)의 주도로 진행되었다. 안종태는 마을 주민들에게 『독립신문』 기사를 소개하고, 한국은 일제로부터 독립할 수 있다는 내용의 연설을 하였다. 이어서 마을 주민들에게 다음날에도 만세시위를 하자고 하였다. 다음날인 28일 재개된 만세시위에도 참여하였다. 이날 시위에는 600여 명이 모였고, 전날과 마찬가지로 안종규와 안종태가 시위를 주도하였다. 시위대의 일원으로 오산리(梧山里)의 들판에 모여 그 일대를 행진하며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어서 안종규는 백석면사무소로 모이자는 홍죽리(弘竹里) 구장 이근영(李根榮)의 통지에 의거해서 시위대를 이끌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백석면사무소로 행진하였다. 이때 시위대들과 함께 백석면사무소 앞으로 행진을 하다가 일제 군경에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5월 2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6월 3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이에 “조선민족으로서 정의인도에 의해서 행동한 것은 범죄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면서 재차 상고하였지만, 그해 8월 28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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