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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광채

高光彩

1876. 8. 4 ~ 1974.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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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고광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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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담양(潭陽)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담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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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고광순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76년 8월 4일 전라남도 담양군(潭陽郡) 창평면(昌平面) 유천리(柳川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장흥(長興)이고, 호는 석로(石老)이다. 유천리는 장흥 고씨 집성촌으로 고제량(高濟亮)·고광덕(高光德, 본명 고광수)·고광문(高光文)·고광훈(高光薰) 등 친족과 함께 1907년 전후해 창의한 의병장 녹천(鹿川) 고광순(高光洵)의 창의를 힘껏 도왔으며, 의병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906년 11월 고광순은 광양의 백낙구(白樂九), 장성의 기우만(奇宇萬) 등과 함께 구례 중대사(中大寺)에 모여 거의를 약속하였다. 백낙구 등이 체포되면서 계획이 무산되었지만 이후에도 창의의 뜻을 꺾지 않았다. 고광순은 1907년 1월 24일 전남 창평군(昌平郡) 저산면(猪山面) 분암리(墳庵里)의 전주 이씨 제각에서 본격적인 창의의 깃발을 들었다. 이때 의병대장으로 고광순을 추대하고, 우익장(右翼將)이자 참모를 맡았다. 남원에서 일어난 양한규(梁漢奎) 의병부대와 연합하여 남원읍을 공략하기로 논의하고, 고광순과 함께 의병부대를 이끌고 남원성으로 향하였다. 1907년 2월 13일 밤 양한규 의병부대가 먼저 남원성을 기습 공격해 점령하였으나 도주하는 진위대 추격 과정에서 양한규가 전사하고 말았다. 이에 곧 전세가 역전되었고 이튿날 합류한 고광순 의병부대 역시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1907년 4월 25일 고광순과 함께 10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능주(綾州, 현 화순읍)를 공략하였다. 관아를 점령하고, 주민들을 괴롭히던 일본인의 집과 상점을 소각하는 소기의 성과를 올렸다. 다음 날 광주로 진격하는 접경인 동복(同福)으로 진군하다가 광주에서 파견된 관군과 도마치(圖馬峙)에서 교전하여 패배하였다. 연이은 패전으로 인해 일본군의 군사력과 전투 능력을 체감한 고광순은 이전부터 생각한 장기 항전책인 지리산 근거지론을 수립하였다. 이후 9월까지 고광순 의병부대는 소수의 병력을 이끌고 유격전을 벌이는 한편, 화약과 총기 등을 개량하고 훈련을 거듭하였다. 그 결과 1907년 9월 11일 고광순이 도독이 되고, 신덕균(申德均)·윤영기(尹永淇) 등의 부대와 연합하면서 새로운 편제를 갖추게 되었다. 이때 연합군의 지휘부에서 빠졌으나 고광덕·고광문 등과 함께 의병장 고광순의 휘하에서 유격 부대를 훈련·지휘하는 역할을 수행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전략에 따라 지리산 피아골을 근거지로 삼기 위해 고광순 의병부대는 보성에서 남원을 거쳐 지리산으로 진입하였다. 이때 교통의 요지이자 일본인이 많이 거주하는 동복 지역을 먼저 공략할 필요가 있었다. 9월 15일 새벽에 동복의 헌병분견소를 공격하였으나 도포사(都炮士) 박화중(朴化中)이 전사하는 피해만 입고 말았다. 선봉장 고광덕의 집인 남원 효기리 응령(應嶺)으로 물러난 부대는 다시 지리산 진입을 시도하였다. 9월 18일 남원에서 곡성(谷城)·광양(光陽)·구례(求禮)를 거쳐 지리산 화개동(花開洞)을 지나 피아골 계곡 아래에 자리 잡은 연곡사(鷰谷寺)에 도착한 고광순은 연곡사를 본영으로 삼았다. 이때 고제량·고광덕·고광훈 등과 함께 의병을 훈련시키면서 전력을 키워나갔다. 그러나 당시 지리산 문수암 일대로 진입해 고광순 의병부대와 합류하려던 김동신(金東臣) 의병부대가 일본군에게 진압되면서 위기를 맞았다. 이를 계기로 지리산 화개동에 진입한 일본군은 진해만의 중포대대(重砲大隊)의 소대 병력, 광주에서 출동한 1개 중대, 그리고 진주경찰서의 순경 등을 파견해 고광순 의병부대도 공격하였다. 쌍계사 뒤편 신흥리(新興里)에 집결한 일본군은 1907년 10월 16일 새벽 통곡봉 밑 능평재를 넘어 연곡사 뒤편 계곡으로 빠르게 침투하였다. 고광순은 고광덕과 윤영기에게 병력을 둘로 나누게 한 후 화개동을 급습하게 하였으나 길이 엇갈리면서 고광순은 고제량 등 10여 명의 병력과 함께 포위되었고, 외롭게 항전하다가 전사하고 말았다. 이때 선봉장 고광덕을 따라 외곡을 넘어 화개동으로 진입하는 부대에 편성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선봉장 고광수와 함께 창의 초기부터 참여한 친족이자 우익장 역할을 하면서 군사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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