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曺二祿

曺二祿

1878. 11. 22 ~ 1919.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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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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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창(居昌)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거창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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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거창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78년 11월 22일 경상남도 거창군(居昌郡) 가조면(加祚面) 일부리(一釜里)에서 태어났다. 서울을 비롯한 각 지역의 만세운동 소식이 거창 지역으로 전해지자 가북면(加北面)의 김병직(金秉直)과 가서면의 어명준(魚命俊)이 주도하여 3월 20일 장기리 장날 시장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두 사람이 만세를 선창하는 가운데 400~500여 명에 달하는 군중이 모여들어 구호를 외치며 시위에 참여하였다. 김병직·어명준의 체포 소식을 접한 가서면의 지역유지 50여 명은 3월 21일 석강리(石岡里) 정자나무 아래에서 비밀모임을 갖고, 거창읍 장날인 3월 22일 대대적인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가서면·가북면의 주민들을 일제히 동원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계획이 사전에 누설되어, 회합에서 선임된 오문현(吳文鉉)·어명철(魚命喆)·김채환(金采煥)·김호(金濩)·최영순(崔榮淳) 등 책임대표 5명이 3월 22일 아침에 체포되어 거창의 일본군 헌병대로 연행되었다. 만세시위를 주도하던 대표들이 구속되었다는 소식을 접하자 가서면·가북면 주민들과 함께 3월 22일 오후 2시 30분경 장기리 만학정(晩鶴亭) 앞으로 나갔다. 속속 모여든 3,0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만세를 외쳤고, 구속되어 있는 사람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거창읍으로 행진하였다. 시위대열에 서서 거창 일본군 헌병대로 가던 도중 살피재 근처에서 거창 일본군 헌병대와 용산(龍山) 헌병분견대가 출동하여 시위대를 저지하였다. 일본군 헌병대의 해산 명령에도 시위군중과 함께 함성을 지르며 대항하였다. 하지만 일제 헌병들의 총격으로 배영환(裵永煥)·신문구(愼文九)·이석종(李錫宗)·허경두(許瓊斗)와 함께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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