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義淳
趙義淳1874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0)
관련 사건
- · 연기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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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10) 충청남도 연기군(燕岐郡) 남면(南面) 양화리(陽化里, 현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 일대)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19년 당시 46세이므로, 1874년생으로 추정된다. 치안(致安)이라는 다른 이름이 있다. 1919년 당시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고, 3월 31일 양화리의 횃불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연기군에서는 3월 23일 군내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제1차 횃불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이후 제2차 횃불만세시위가 연기군의 각 지역에서 3월 30일부터 4월 1일까지 집중적으로 전개되었다. 남면에서는 3월 31일부터 제2차 횃불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보통리(洑通里)에서는 밤 8시경부터 박원칠(朴元七)이 주도하여 약 10명의 주민들이 뒷산에 올라가 횃불을 밝히고,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방축리(方丑里)에서는 이날 밤 8시 경부터 임헌상(林憲祥)이 주도하여 약 30명의 주민들이 황우산(黃牛山)에 올라가 횃불을 밝히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양화리·진의리(眞儀里)·월산리(月山里)에서는 연합으로 제2차 횃불만세운동이 준비되었다. 3월 31일 같은 양화리에 사는 이덕민(李德敏)의 집에서 임덕문(林德文), 진의리의 김봉식(金鳳植), 월산리(月山里)의 임영복(林永福) 등과 회합하여 만세운동 계획을 협의하였다. 이 회의에서 당일 밤 주민들과 함께 아월산(雅月山)에 올라가 횃불을 밝히고 만세운동을 전개한다는 계획을 결정하였다. 회의를 마치고, 곧바로 이덕민·임덕문·김봉식·임영복 등과 함께 양화리의 임덕화(林德化)에게 권유하고 재촉하여 마을 주민 100여 명과 함께 계획한 대로 아월산으로 올라갔다. 어둠이 깔리자 횃불을 밝히고,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는 횃불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사기가 오른 만세시위대를 지휘하여 진의리로 이동하였다. 임영철(林營喆)에게 동참할 것을 권하여 진의리 마을 주민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리고 다시 이들을 지휘하여 송담리(松潭里) 만세운동을 일으키기 위해 이동하였다. 송담리에서는 이미 주민들이 횃불만세운동을 전개하고 있었기 때문에 곧바로 이들과 합류하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횃불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남면 각지의 횃불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는 이유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18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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