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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元祥

趙元祥

1858. 4. 16 ~ 1925.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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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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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夫餘)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부여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5) 1858년 4월 16일 충청남도 부여군(扶餘郡) 부여면(夫餘面) 왕포리(旺浦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면서 천도교에 입문하여 활동하였다. 1919년 부여 지역의 만세운동은 천도교 조직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각 지역의 천도교 교구망은 독립선언서의 지역 간 전달과 배포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부여지역의 독립선언서 전달은 충청남도 지역에서도 상당히 빠른 편이었다. 천도교 교구조직을 통해 서울에서 만세운동이 시작된 다음날인 3월 2일 부여의 천도교 교구실로 독립선언서가 전달되었다. 3월 2일 오후 6시경 전라북도 익산(益山)의 천도교구에서 보낸 독립선언서를 받은 논산(論山) 천도교구의 김태호(金泰昊)는 곧장 부여로 출발하였다. 오후 9시경 부여면의 천도교 교구실에 도착하여 교구실에 있던 김종석(金鍾錫)·황우열(黃宇烈)·박성요(朴性堯)·이범인(李範仁)·최규석(崔奎錫) 등 6명에게 독립선언서 40장 1묶음을 전달하면서 ‘교주 손병희(孫秉熙)가 발송한 것이니 비밀리에 배포할 것’을 당부하였다. 이들은 같은 날 밤 곧바로 부여의 각 지역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였다. 당시 황우열에게서 연락을 받고, 3월 3일 새벽 2시경 왕포리 손익희(孫益熙)의 집을 방문하였다. 이 자리에서 황우열에게서 독립운동의 취지를 듣고, 손익희와 함께 그 자리에서 즉시 그 뜻에 찬성하여 같이 행동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에 황우열에게서 “교주 손병희(孫秉熙) 등이 조선 독립을 위해 발표한 것이니, 신속하고도 비밀리에 배포하라”는 당부와 함께 독립선언서 5장을 받았다. 곧바로 손익희의 집을 나와 중정리(中井里)와 염창리(鹽倉里)의 도로에 각 1매씩 뿌리고, 남은 3매는 이날 새벽 5시경 석성면(石城面)의 김덕빈(金德彬)에게 전달하였다. 이후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였다는 이유로 일제 헌병에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4월 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을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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