曺雙童
曺雙童1901. 10. 20 ~ 1979. 2. 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충남 천안군 입장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901년 10월 20일 충청남도 천안군(天安郡) 입장면(笠場面) 양대리(良垈里)에서 태어났다. 직산금광(稷山金鑛) 광부로 일하였다. 1919년 3월 20일 천안군 입장면 양대리 장터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20일 입장면의 첫 번째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이 만세시위는 안시봉(安時鳳)을 중심으로 한 직산금광 광부들의 만세시위와 민옥금(閔玉錦)·한이순(韓二順)·황금순(黃錦順) 등을 중심으로 한 사립광명학교(私立光明學校) 학생들의 만세시위가 같은 날 동시에 일어나 양대리 장터에서 하나로 합쳐져 전개되었다. 직산금광의 광부 안시봉은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전개되고 있음을 파악하고, 이에 호응하여 만세시위를 전개하겠다고 결심하였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양대리 장터의 장날인 3월 20일을 거사일로 결정하고 그 준비를 위해 자택에서 태극기를 제작하는 한편 만세시위를 함께 할 동지들을 규합하였다. 안시봉으로부터 거사에 대한 의견을 듣고 이에 공감하여 김병렬(金秉烈)·김채준(金採準) 등 직산금광의 다른 동료 광부들과 함께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결의하였다. 3월 20일 오전 10시경 안시봉·김채준·김병렬 등과 함께 양대리 장터로 나갔다. 안시봉의 지도에 따라 시장의 군중에게 동참할 것을 호소하며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곧이어 민옥금·한이순·황금순 등이 주도하는 광명학교 학생들의 시위대가 학교에서 출발하여 ‘조선독립만세’를 크게 외치면서 양대리 장터로 들어오자, 이들과 합류하였다. 광명학교 학생들과 한동안 격렬한 만세시위를 전개한 후, 이들과 함께 양대리 장터에서 약 3㎞ 떨어진 하장리(下場里)의 입장시장을 향해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였다. 입장으로 가는 도중 광명학교의 교사 강기형(康琦衡) 등 많은 주민들이 만세시위를 목격하고 합류하였다. 시위대가 입장시장에 도착했을 때는 600~700여 명으로 규모가 확대되었다. 이들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태극기를 흔들며 시장 곳곳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양대리 장터에서 시작한 만세시위가 입장시장으로까지 확산되자, 일제는 천안헌병대와 천안철도엄호대를 출동시켰다. 만세시위에 대한 일제 헌병의 강제 해산 시도에 맞서 격렬하게 저항하였으나, 압도적인 무력을 가진 일제 헌병을 이겨내지 못하고 50여 명이 체포되면서 이날의 만세시위는 해산되었다. 이때 안시봉·김병렬·김채준 등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4월 28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