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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聲根

趙聲根

미상 ~ 1919.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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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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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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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3.1운동

포상 정보

  • · 애국장(1998)

관련 사건

  • · 1919년 함안군 군북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8) 자료의 한계로 정확한 출생시기와 출신지에 대해 알려진 내용은 없다. 본관은 함안(咸安)으로, 활동 당시에는 경상북도 함안군(咸安郡) 녹동면의 함안 조씨 집성촌에 거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19년 3월 20일 함안군 군북면(郡北面)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함안군에서는 고종의 장례식에 참여한 사람들이 독립선언서를 비밀리에 가지고 온 후, 지역 유림·기독교인 등과 더불어 거사 논의를 시작하면서 구체적인 만세시위 계획이 수립되었다. 이후 함안군의 만세운동은 3월 19일 함안면과 3월 20일 군북면 만세시위로 절정을 이루었다. 군북면의 만세시위는 백이산(伯夷山)의 서산서당(西山書堂)과 원효암(元曉庵) 등에서 비밀리에 태극기 제작, 독립선언서 등사, 물품 준비, 각 마을별 참여자 동원 방법 등에 대해 역할을 나누어 치밀하게 준비되었다. 거사 당일인 3월 20일 오전 9시 군북면 동촌리(東村里) 신창학교(新昌學校) 교정에서 학생 50여 명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이후 군북장터로 이동하여 오후 1시경 3,000여 명으로 불어난 시위대와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대규모 시위대의 위세에 일제 경찰이 공포를 발사하고 주재소로 철수하였다. 오후 5시경 약 5,000명으로 불어난 시위대가 주재소로 이동하여 다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에 맞서 일본군 중포병대대 병력까지 합세한 일제 군경이 시위대를 향해 다시 공포탄을 쏘면서 진압하고자 하였다. 이에 맞서 시위대와 함께 투석전을 전개하며 주재소를 공격하였다. 결국 위협을 느낀 일제 군경이 시위대를 향해 실탄으로 조준 사격을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저항하던 시위대 20명과 함께 일제 군경의 총격에 맞아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8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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