曺秉植
曺秉植1892. 4. 21 ~ 1926. 9. 1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4월 영암군 군서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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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2년 4월 21일 전라남도 영암(靈巖) 군서면(郡西面) 동구림리(東鳩林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6일 저녁 군서면 구림리 박찬성(朴贊成)의 가게에서 최민섭(崔旼燮)으로부터, 조극환(曺克煥)의 주도로 영암읍에서 독립운동이 계획되고 있으며, 구림리에서도 동시에 거사할 것을 권유받았다. 이에 박규상(朴奎相)·최기준(崔琪焌)·김재홍(金在洪)·정학순(鄭鶴順)과 함께 찬성하였다. 4월 7일 밤 김재홍·정학순·박규상·최기준과 함께 군서면사무소에 몰래 모여서 면사무소의 등사판으로 시위에 배포할 비품을 인쇄하였다. 조극환이 기초한 독립선언서 500장, 박규상이 경성에서 가져온 손병희(孫秉熙) 등 33인의 서명을 담은 선언서 100장, 태극기 50장 등이었다. 김재홍·정학순·최민섭은 면서기였다. 4월 9일 오전 9시부터 군서면사무소에서 최민섭·박규상·김재홍·최기준과 함께 “우리 동포는 영구히 자유와 독립으로 맹진하라”는 문구를 포함한 『조선독립신문』을 인쇄하였다. 그날 밤에 박규상·최기준과 함께 은밀히 등사판을 구림리 김월봉(金月奉) 집으로 옮겨서 “피도 조선, 뼈도 조선”이라는 가사를 수록한 「조선독립가」 100장과 『조선독립신문』 500장을 인쇄하였다. 4월 10일 오전 최기준·김재홍·정학순과 함께 구림보통학교에 모인 보통학교 학생과 마을 주민 300여 명 앞에서 ‘조선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15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에서 이른바 출판법과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바로 항소하였지만, 같은 해 6월 27일 대구복심법원 원심을 확정하여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장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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