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南潤
趙南潤1894. 9. 10 ~ 1928. 12. 2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5) 1894년 9월 10일 경기도 김포군(金浦郡) 월곶면(月串面) 고정리(高亭里)에서 태어났다. 음식점을 경영하였다. 1919년 3월 29일 월곶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월곶면에서는 3월 22일 고양리(高陽里)의 성태영(成泰永)과 군하리(郡下里)의 백일환(白日煥)·이살눔(李)살눔, 고정리(高亭里)의 최우석(崔禹錫) 등의 주도로 군하리 장터에서 장날을 이용한 최초의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날 시위에 자극받아 그 뒤를 잇는 새로운 만세운동을 결심하고, 주도적으로 준비하였다. 3월 28일 당인표(唐寅杓)의 집에서 당인표·최우석과 함께 새로운 만세운동을 일으키기 위한 준비모임을 개최하였고, 거사일을 다음날인 3월 29일로 결정하였다. “조선의 독립에 찬동하는 주민들은 내일 29일 오전 11시에 구 통진(通津) 읍내에 집합하여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라”는 내용의 「통문」 7통을 작성하여, 갈산리(葛山里)·을산리(乙山里)·고정리·조강리(祖江里)·개곡리(開谷里)·복전리(福田里) 등의 각 마을에 배포하였다. 3월 29일 아침 최우석 등과 함께 군하리로 나갔다. 만세운동이 예정된 장소에는 사전에 「통문」을 읽어보거나, 그 내용을 전달받아 조선 독립의 취지에 동의하여 만세시위에 참여하려는 생각으로 나온 약 400여 명의 주민들이 운집해 있었다. 최우석 등과 함께 시위대를 지휘하여 통진향교(通津鄕校) 앞에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사기가 오르자 시위대를 이끌고 월곶면사무소로 행진하였다. 400여 명의 시위대로 면사무소를 둘러싸고 더욱 큰 목소리로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면장과 면사무소 직원들도 참여할 것을 호소하며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에 일제 경찰이 출동하여 무력으로 만세시위를 탄압하기 시작하여 시위대가 흩어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최우석 등과 함께 해산하지 않고 남아서 끝까지 만세시위를 지속한 수십 명의 주민들을 규합하여 인근의 함반산(含飯山)으로 올라가 만세시위를 지속하였다. 날이 어두워지자 함반산 정상에 횃불을 밝히고 독립만세를 외치는 횃불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1919년 6월 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그해 7월 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면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