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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基錫

趙基錫

1877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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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趙基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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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황주(黃州)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황해도 황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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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09)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9) 황해도 황주군(黃州郡) 송림면(松林面) 겸이포리(兼二浦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19년 당시 43세이므로 1877년생으로 추정된다. 1919년 3월 2일 황주면 남천장터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평안남도 중화군(中和郡)의 천도교인 최창룡(崔昌龍)은 황주군 황주면(黃州面)의 천도교구에 만세시위 소식과 함께 독립선언서 10장을 전달하였다. 황주면 천도교구의 김성준(金聲駿)은 교훈 황기타(黃己拕)와 함께 남천장터가 열리는 3월 2일 일요일에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정하였다. 평소 독립을 염원하던 황주면 황강리(黃崗里)의 최석길(崔錫吉)·김광섭(金光燮), 성남리(城南里)의 김병식(金炳植)은 김성준과 황기타에게 만세운동의 참여를 약속하였다. 그리고 천도교구실을 중심으로 천도교인들에게 남천장터 시위 계획을 알리면서 참여를 독려하였다. 3월 2일 오후 2시경 남천장터에서 천도교인을 중심으로 만세시위가 시작되었다. 황기타는 천도교인을 이끌고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면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으며, 조진영(趙鎭榮)은 장터에 모인 사람들에게 독립선언서의 취지를 연설하면서 참여를 독려하였다. 이때 만세시위에 합류한 후, 시위대와 함께 행진하던 중 황주경찰서 앞에서 일제 경찰과 대치하였다. 일제 경찰이 시위대 일부를 체포하자 이에 격분하여 경찰서로 진입하여 집기를 부수하고 일제 경찰을 제압하였다. 만세시위를 마치고 천도교구실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 일제 경찰이 지원 병력을 이끌고 와서 시위대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19년 5월 28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재차 상고하였으나, 그해 7월 12일 고등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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