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煥喆
鄭煥喆1879. 6. 20 ~ 1954. 10. 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대호지면
- · 정미면 천의장터 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5) 1879년 6월 20일 충청남도 서산군(瑞山郡) 대호지면(大湖芝面, 현 당진시 대호지면) 사성리(沙城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농사하였다. 1919년 3월 이두하(李斗夏)·남계창(南啓昌)·남상직(南相直)·남상락(南相洛) 등 지역 유생들과 함께 서울에서 열리는 고종 장례식에 참여하였는데, 여기서 만세운동을 접할 수 있었다. 돌아와 서울에서 일어난 만세시위 소식을 전하였고, 이후 서산 지역에도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이 전해지면서 만세시위 열기가 고조되었다. 이러한 유생과 지역 유지의 뜻을 모아 만세운동으로 구체화한 것은 면장 이인정(李寅正)을 비롯한 면사무소 직원들이었다. 1919년 3월 26일 대호지면사무소에서 면서기 김동운(金東云)·강태훈(姜泰壎)·민재봉(閔載鳳)과 면사무소 직원 송재만(宋在萬) 등이 회합을 갖고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뜻을 모았다. 3월 27일 다시 모인 후 김동운이 “(장날인) 4월 4일 오전 8시 경까지 도로 수선을 위해 면민 각호 1명씩 집합하라는 공문을 작성해 구장들에게 배포하고, 정미면 천의시장으로 가서 독립만세를 외치자”라고 실행 방안을 제안하였다. 4월 3일에는 송재만이 9개 마을의 구장에게 도로 수선을 위해 집합하라는 내용의 면장 명의로 된 공문을 전달하며 주민들에게 고지하도록 부탁하였다. 4월 4일 아침 도로 보수 공사에 사용할 연장을 지참하고, 다른 주민들과 함께 대호지면사무소 앞에 모였다. 600여 명의 주민들이 모인 가운데 면장 이인정으로부터 “오늘 모이라고 한 목적은 도로 보수가 아니라, 만세운동이니 동참하라”는 연설을 듣고, 크게 공감하여 곧바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선두에 대형 태극기를 앞세운 시위 대열에 참여하여 송재만 등의 지휘에 따라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대호지면사무소로부터 천의장터로 향하였다. 행진하면서 외치는 ‘조선독립만세’의 구호를 듣고 정미면의 주민들까지 참여하여 시위대의 규모는 1,000여 명으로 확대되었다. 이들과 함께 천의시장의 곳곳을 행진하며 독립만세를 외치는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오후 4시경 천의장터에서의 만세시위는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뒤늦게 출동한 일제 경찰들이 만세시위에 참여했던 주민들 소지품 중 태극기를 발견하고, 그것을 빼앗는 과정에서 발포하여 4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이 소식을 접하고 분노하여 다른 주민들과 함께 천의주재소 습격에 참여하여 주재소를 향해 돌을 던지는 등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날의 만세시위 이후 대호지면으로 출동한 홍성 헌병수비대의 만세운동 참여자에 대한 대대적인 색출·검거 과정에서 붙잡혀 서산경찰서에 구금되었다. 1919년 4월 24일 서산경찰서의 즉결심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태(笞) 90도(度)를 받아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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