諸英淳
諸英淳1911. 1. 27 ~ 1991. 2. 21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하동청년동맹
- · 근우회
- · 조선공산주의자재견협의회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8)
관련 사건
- · 1931년 격문사건부산적색노동조합협의회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8) 1911년 1월 27일 경상남도 하동군(河東郡) 하동면(河東面) 해량리에서 태어났다. 1927년 1월 15일 경남 진주(晉州)에서 여자잠업강습소(女子蠶業講習所)를 졸업하였다. 이후 고향인 하동으로 돌아와서 여성단체 및 청년단체에서 여성의 활발한 사회적 활동과 청년의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위한 운동을 전개하였다. 1928년 7월 1일 근우회(槿友會) 하동지회(河東支會)가 설립될 때 서무재정부(庶務財政部)를 담당하였다. 근우회는 신간회(新幹會)가 조직된 직후 자매단체의 성격을 띠며 1927년 5월 창립되어 1931년 해산될 때까지 여성의 항일 구국 활동과 여성의 지위 향상을 목적으로 활동한 단체로 김활란(金活蘭)·유영준(劉英俊) 등이 주도하였다. 근우회 하동지회는 하동 지역 여성들의 대동단결을 도모하고 항일 및 여성운동을 전개하기 위해서 설립되었다. 위원장은 김한순(金漢順)이었으며, 채소정(蔡小丁)·조필열(趙必烈)·강정회(姜貞會)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주로 야학이나 강연과 같은 계몽 및 교육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9년 6월 9일 하동청년동맹 제2회 정기대회에서 집행위원으로서 여자부장으로 선정되었다. 하동청년동맹은 하동군의 청년조직으로 풍속 교정과 덕성 함양, 문자 보급, 지식 계발 및 애국계몽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7월에는 서울에서 개최된 근우회 제2회 전국대회에서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정되어 활동하기도 하였다. 이후에는 활동무대를 부산으로 옮겨 부산진(釜山鎭)의 조선방직회사(朝鮮紡織會社) 직공이 되어 노동운동가로 활동하였다. 1931년 5월 초순경 이른바 ‘격문(檄文) 사건’에 연루되어 부산경찰서에 붙잡혔다. 같은 달 27일 고광한(高光翰)·윤달선(尹達善)·임국희(林國熙) 등 16명과 함께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 출판법 위반으로 부산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가, 6월 5일 불기소로 풀려났다. 1931년 6월 경에는 김태영(金台榮)·김병철(金炳哲)·조복금(趙福今) 등과 함께 『노동자(勞動者)』라는 신문과 격문 약 150부를 인쇄하여 각 공장의 노동자에게 배포하였다. 이 일로 그해 7월 13일 다시 부산경찰서에 붙잡혔다. 이른바 ‘부산적색노동조합협의회(釜山赤色勞動組合協議會) 사건’으로 송치되었다. 같은 해 11월 12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1932년 1월 23일 대구의 고광륜(高光輪) 집에서 고광륜·이상조(李相祚)·김영애(金英愛) 등과 모여 사회과학연구회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동지 규합 활동을 전개하였다. 당시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한 비밀결사 조선공산주의자재건협의회에 연루되어 대구경찰서에 붙잡혔다. 이후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 출판법 위반으로 송치되었다가, 같은 해 7월 2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그해 11월 16일 하동경찰서에 다시 붙잡혔다가, 12월 9일에 방면되기를 반복하였다. 1933년에는 부산의 적색교육노동조합(赤色敎育勞動組合)과 남해공산주의자전위동맹(南海共産主義者前衛聯盟)의 연락책으로 활동하였다. 남해공산주의자전위동맹은 1933년 박태권(朴泰權) 등이 남해도(南海島)의 농민들을 대상으로 혁명적 농민조합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조직한 비밀결사인데, 이 조직과 부산지역의 연계를 위한 연락을 담당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최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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