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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奉眞

韓奉眞

1872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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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韓奉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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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고성(固城)임시정부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고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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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0) 경상남도 고성군(固城郡) 개천면(介川面) 북평리(北坪里) 출신으로 출신지 소재 옥천사(玉泉寺) 승려였다. 자료에 따르면 1872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은 한봉실(韓奉實)이다. 1919년 전국적으로 만세시위가 전개될 때, 경남 옥천사의 승려들은 애국지사와 독립운동가를 지원하였다. 승려 신화수(申華秀)와 함께 이 일에 종사하였다. 특히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자금 모집 및 친일분자 처단 등을 목적으로 활동하던 대한독립청년단(大韓獨立靑年團) 단원이자 경남 서부지역의 독립운동에 힘쓰던 변상태(卞相泰)와 고성군 고성읍 시위에 참여하였던 이주현(李周賢) 등에게 잠자리와 음식을 제공하고, 연락책 등의 역할도 하였다. 1920년 (음)3월 임시정부에서 파견된 윤영백(尹永伯)과 협력하여 경남 고성군에서 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하였다. 개천면 명성리(明星里)에 거주하는 구중권(具仲權)의 집에서 마능숙(馬能淑)과 마진석(馬辰錫) 등에게 군자금 모집활동에 적극 나설 것을 권유하다가 ‘독립운동을 선동 및 협박하였다’는 혐의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21년 3월 31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과 협박죄 등으로 징역 1년을 받았고, 1921년 5월 2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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