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昌烈
崔昌미상 ~ ?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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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5) 자료의 한계로 출생시기와 출신지 등은 알 수 없다. 1919년 9월 당시 평안북도 운산군(雲山郡) 북진면장(北鎭面長)으로 재직하던 중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원단체인 청년외교단 상하이(上海) 통신원인 임득산(林得山)이 비밀리에 찾아와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 중인 파리강화회의에서 한국의 독립을 승인할 것이니 독립을 위해 설립된 임시정부에 협력할 것을 권유하였다. 또한 적당한 사람이 있으면 참사(參事), 면감(面監)을 설치하고 군자금을 모집하여 임시정부의 연통제(聯通制) 평북독판부로 보낼 것을 부탁하였다. 이에 김병제(金秉濟)를 참사(參事)로, 최례엽(崔禮葉)·최용학·동신면장(東新面長) 백종수, 그리고 두 명을 더 면감으로 추천하였다. 1920년 1월 12일 임시정부 연통제 평북 운산군 군감(郡監)으로 임명되어 임시정부의 명령과 공문 전달, 구국재정단원(救國財政團員) 모집, 군자금 수합과 납부, 공채 발매, 독립운동에 필요한 정보통신 연락 등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는 이 무렵 사망한 것으로 파악하였다. 1920년 6월 이후 운산군 참사 이영근(李永根), 의사 최례엽, 자산가 정중명(鄭重明)·신용학(申龍學)·윤영학(尹永學)·최봉선(崔鳳宣)·이기준(李麒俊), 기독교 목사 김병제, 운산군청 고원(雇員) 이인섭(李仁燮) 등과 약 2,000원을 모집하였다. 그리고 운산군 내 자산가 김응학·이재수·이예용·한준·윤재옥·백종수·최성준·한석태 등으로부터 모집한 1,690원을 합하여 3,610원을 평북독판부로 보냈다. 이 일이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1921년 초 붙잡혔다. 1921년 4월 평양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을 받았다. 풀려난 뒤, 1923년 6월에는 국내에서 민립대학 운산지방부 설립 총회에 참여하는 등 교육활동을 전개하였다. 1931년 5월에는 운산군 지역 면협의원에 당선된 것이 확인된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윤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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