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車均祥

車均祥

1894. 12. 15 ~ 1970.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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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車均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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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의주(義州)임시정부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의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신민회
  • · 대한민국 임시정부
  • · 흥사단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05인 사건
  • · 서울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4년 12월 15일 평안북도 의주군(義州郡) 고성면(古城面) 정주리(正州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연안(延安)이고, 호는 덕주(德州)이다. 이명으로 한자가 다른 차균상(車均相)을 썼다. 평북 선천군(宣川郡) 신성고등보통학교(信城高等普通學校)를 다니던 중 신민회(新民會)에 가입하였다. 1911년 일제가 민족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일으킨 이른바 105인 사건에 휘말리자 피신하기 위해 중국 안둥(安東)으로 갔다. 1914년 12월 미국 하와이(Hawaii)로 건너가 이승만(李承晩)이 교장으로 있던 한인중앙학원에 입학하여 수학하였다. 그러나 병 치료를 위해 1915년 11월 귀국하여 서울에 머물렀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패전국 식민지들이 차례로 독립하면서, 국내적으로는 일제의 무단통치에 대한 불만과 독립에 대한 희망이 점차 증폭되기 시작하였다. 각 지역의 독립운동 세력들은 일제 식민지 지배의 부당성과 조선 독립의 당위성을 세계에 알리기 위한 활동을 준비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을 시작으로 만세운동이 일어나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이때 서울에 머물면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이후 일제의 탄압을 피해 독립운동에 나서기 위해 상하이(上海)로 다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였다. 같은 해 7월 임시정부에서 일제의 역사왜곡에 대항하여 한민족의 역사를 서술하기 위해 조직한 사료편찬위원회에 참여하여 조역(助役)으로 근무하였다. 9월 1일에는 임시정부 의정원의 결의로 재무부 주계국(主計局) 서기(書記)에 임명되었다. 10월에는 주현측(朱賢則)·오정은(吳正殷) 등과 함께 임시정부 조사원(調査員)으로 임명되어 평북 선천군을 담당하였다. 이듬해인 1920년 4월 흥사단(興士團)에 입단하여 재무행정위원이 되었다. 1921년 원동위원부에서 활동하기도 하였으며, 1922년 1월 흥사단 상임위원이 되었다. 이후 연해주로 건너가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활동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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