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춘삼
姜春三1858. 5. 3 ~ 1913. 5. 6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박기섭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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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0) 1858년 5월 3일 황해도 해주군(海州郡) 청운방(靑雲坊) 사리(四里) 마치동(馬馳洞)에서 태어났다. 1907년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해산된 후, 해산 군인이 합류한 의병진이 황해도와 평안도 일대 각처에서 봉기하였다. 황해도 일대 의병은 여러 소규모 부대로 나뉘어 유격전을 전개하였으며, 그 수는 600~700명에 달하였다. 그중 주력은 전 목천군수 박기섭(朴箕燮)이 이끈 의병부대였다. 군대해산 이후 각 지역에서 의병이 봉기할 때 전 군부대신 신기선(申箕善)이 박기섭에게 고종의 밀지를 보내 창의를 격려하였다고 한다. 황해도 유림은 박기섭을 의병장으로 추대하고 평산 도평산(桃坪山)에서 의병부대를 결성하였다. 소규모의 의병을 인솔하고 박기섭 부대와 연결하여 활동하였다. 특히 박기섭 부대의 중대장인 심노술(沈魯述)이 거느린 의병진과 함께 평산군 서편에서부터 해주군 사이에서 활약하였다. 1908년 4월에는 해주 청운면 부근에서 20여 명을 거느리고 일본군과 교전하였다. 일본군이 집을 조사하니 산탄(散彈)과 화약, 광목 등이 발견되었다. 1908년 8월 의병 70명을 인솔하여 심노술 의병대와 합진하여 연안(延安)과 해주(海州) 지역에서 활동하였다. 10월 초에는 해주군 운곡면에서 일본 순사를 공격하였으며, 11월에는 해주 동촌(東村) 청단시(靑丹市) 쟈라기 벌판에서 접전을 벌였다. 1908년 11월 19일 청단헌병분견소 헌병대에 부하 4명과 함께 체포되었다. 이후에도 항일투쟁을 지속하다가 1913년 5월 6일 다시 체포된 직후 청단시 학곡(學谷)에서 피살되어 순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서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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