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乙鉉
鄭乙鉉1875 ~ 1917. 6. 17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양회일 의병부대(쌍산의진)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6)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6) 전라남도 화순군(和順郡) 이양면(利陽面) 송정리(松亭里)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75년생으로 추정된다. 본관은 하동(河東)이고, 자는 학중(學中)이다. 본래 체구가 크고 강건하며 힘이 뛰어났다고 알려져 있다. 1906년 이양면 증리(甑里) 쌍산(雙山)에서 양회일(梁會一)이 의병부대를 조직하자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06년 10월 양회일은 인재를 모집하고, 인근의 산포수(山砲手)를 모아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의병부대를 양성하였다. 양회일과 뜻을 함께한 동지들을 기록한 『행사실기(杏史實記)』의 「창의록(倡義錄)」에 ‘양회일이 의사를 모집하자 피땀을 흘리며 달려왔다’고 기록할 정도로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해 4월 21일 양회일 의병부대 소속으로 능주(綾州)의 관아로 진격해 점령하였고, 화순의 주사청·우편소·경무서 등 일제의 기관을 포함해 헌병대분파소와 화순성(和順城)까지 공격하였다. 이어서 전남 장성(長城)의 기삼연(奇參衍), 광주(光州)의 고광순(高光洵) 등과 합류하기 위해 광주로 북상하기로 계획하고, 이를 위해 너릿재를 통과하기로 하였지만, 일본군의 매복에 대한 부담으로 인해 지휘부는 화순과 동복(同福)의 접경지인 도매치(都埋峙) 인근에서 숙영하기로 하였다. 같은 해 4월 23일 아침 너릿재에서 매복하고 있던 일본군은 양회일 의병부대가 진을 치고 있던 도매치를 포위하고 공격하였다. 이 과정에서 의병부대의 전열이 무너졌고, 의병장 양회일과 주요 간부들이 체포되고 말았다. 이때 도매치 전투에 참여하여 일본군에 맞서 항전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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