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원
姜遂元1877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이강년 의진
포상 정보
- · 애국장(2015)
관련 사건
- · 정미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5) 1877년경 충청북도 제천군(堤川郡) 동면(東面) 흑석리(黑石里, 현 제천시 흑석동 일대)에서 태어났다. 흑석동은 대대로 진주(晉州) 강씨(姜氏)가 살아왔기 때문에 본관은 진주 강씨였을 것이다. 1907년 8월경 이강년(李康年) 의병부대에 합류한 후 의병 활동에 참여하였다. 이강년은 1896년 을미의병(乙未義兵) 당시 창의하여 경북 문경(聞慶)과 충북 일대에서 활동을 벌인 의병장으로 1907년 다시 의병을 일으켰다. 이강년은 1897년 이후 충북 영춘군(永春郡) 금채동(金采洞, 현 충북 단양군 적성면 상원곡리)에 은거하였다. 따라서 1907년 정미의병(丁未義兵)을 계기로 다시 창의할 때도 제천과 단양은 이강년 의병부대의 주요 활동 무대가 되었다. 이강년 의병부대의 초기 구성원 역시 제천과 단양 출신 의병이 주를 이루었다. 실제 1907년 5월 영춘군 용소동(龍沼洞, 현 충북 단양군 영춘면 동대리)에서 이강년은 참모들과 창의를 계획하였고, 영춘군 출신 의병장 김상태(金尙台)와 제천군 출신 의병장 안성해(安成海) 등이 중심이 되어 의병을 소집하였다. 이에 단양(丹陽)·영월(寧越)과 접경 지역인 흑석리에 거주하던 중 의병 소집에 응하여 참여하게 되었다. 안성해가 제천 청풍면(淸風面)에서 포군을 모아 의병부대를 구성할 때, 화승총 1정을 받고 포군이 되었다. 1907년 5월부터 8월까지 준비 단계를 거친 이강년 부대는 8월 초부터 원주진위대(原州鎭衛隊)의 부대장인 민긍호(閔肯鎬)를 비롯한 해산 군인들이 합류하며 본격적인 의병 전쟁에 뛰어들게 되었다. 8월 22일 부대원 100여 명과 함께 영춘군 읍내와 가까운 방두리(方頭里) 일대로 진입하여 일본 순사들을 포위한 후 치열한 교전을 벌였다. 일본인 순사 2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판결문에 의하면 순사 시체를 읍내 입구에 서 있는 나무에 매단 뒤 태워버려 의병의 사기를 높이고, 주민들의 의병 지원을 독려하였다고 한다. 이 기록을 통해 당시 주민들이 품은 일본인 순사에 대한 적개심이 컸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이강년 의병부대는 충주(忠州)로 남하해 충주성(忠州城) 함락을 위해 싸웠다. 이때 참여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1909년 말부터 전개된 일본군의 대대적인 의병 수색 및 토벌 작전으로 인해 행적이 드러나 1910년 전후한 무렵에 체포되었다. 체포 당시 화승총 1정과 화약통, 화승 1가닥 등을 소지하고 있었다. 1910년 4월 1일 공주지방재판소 청주지부에서 이른바 폭동 및 살인죄로 징역 15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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