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韓在元

韓在元

1895 ~ 1920. 10. 22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韓在元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미상만주방면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간도참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자료에 따르면 1895년생으로 추정된다. 자료의 한계로 출신지는 알 수 없다. 1920년 중국 왕칭현(汪淸縣) 십리평(十里坪)에 거주하며 독립운동단체에 참가하여 정보 수집 활동을 전개하였고, 식량 공급과 가옥 건축에도 참여하였다. 일제의 한반도 강점 전후 해외로 망명한 항일운동가들은 한인사회를 기반으로 하여 간도지역을 중심으로 독립운동기지 건설에 힘을 기울였다. 이를 위해 조직된 독립군부대들은 1919년 8월부터 한반도 내로 진입하여 작전을 전개하였다. 이들의 활동은 일제의 한반도 식민통치는 물론이고 나아가 그들의 대륙 침략 정책에 커다란 타격을 주었다.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일제는 간도에서 활동하는 독립운동단체를 탄압하기 위하여 1920년 8월 「간도지방불령선인초토계획(間島地方不逞鮮人剿討計劃)」을 수립하였다. 이 계획을 토대로 일제는 10월에 훈춘사건을 조작하며 대규모 병력을 간도에 파견하여 독립군부대들과 전투를 벌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일제는 간도 한인사회에 엄청난 피해를 주게 되는 간도참변(間島慘變)을 일으켰다. 일제는 20,000여 명의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여 간도에 침입하였다. 한반도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 조선군 제19사단은 간도 침공의 주력부대로서 옌지(延吉)·룽징(龍井)·허롱(和龍)·왕칭·훈춘(琿春) 일대를 토벌 구역으로 설정하였다. 일본군은 이들 지역에서 1920년 10월 14일부터 11월 20일까지 항일단체들과 항일근거지로 지목되는 마을과 학교, 교회 등에 대한 대대적인 소탕 작전을 전개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간도파견원은 『독립신문(獨立新聞)』에 북간도의 피해상황에 대해 인명피해로 피살 2,626명·체포 46명, 재산피해로 민가 3,208동·학교 39개교·교회당 11개소·곡물 53,265섬이 소실된 것으로 보도하기도 하였다. 1920년 10월 22일 거주지에서 조선군 제19사단 보병 제76연대에 총살당하여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최병도⋮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