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蔡漢錫

蔡漢錫

미상 ~ 1925.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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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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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2010)

관련 사건

  • · 독립군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0) 자료의 한계로 출신지와 출생시기는 알 수 없다. 이명으로 한자를 달리한 채한석(蔡漢石)을 썼다. 다만 함경북도 온성군(穩城郡) 주원면(周原面)에 위치한 황파진 지역의 헌병보조원으로 재직하였으며, 함북 출신의 양하청(梁河淸)이 이끄는 독립군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온성군은 두만강을 사이에 둔 중국과의 접경지역이었으므로 독립군 활동을 위해 많은 이들이 이곳을 거쳐 간도 지역으로 넘어갔다. 독립의 뜻을 이루기 위해 간도로 넘어가 훈춘현(琿春縣) 밀강사(密江社) 삼마동(三麻洞)에 근거지를 둔 양하청이 이끄는 독립군에 가담하였다. 국민회 간부로 활동하기도 한 양하청은 1920년 봄부터 홍범도(洪範圖)·이범윤(李範允) 등과 긴밀하게 연락하며 두만강의 국경지대인 회령(會寧)·종성(鍾城)·온성 등지를 대상으로 국내진공작전을 전개하였다. 온성군의 지리에 밝은 장점을 살려 국내진공작전에 투입되면서, 독립군 80여 명이 온성군에 잠입할 때 길 안내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이러한 도움에 힘입어 양하청 부대는 일본군의 방어선을 뚫고 지속적으로 전진할 수 있었다. 특히 3월 17·18일 이틀에 걸쳐 벌어진 전투에서는 미포면(美浦面) 미점동(美占洞)에 설치된 헌병감시소를 습격하여 전선 및 전화선을 끊고 시설을 파괴, 섬멸하는 쾌거를 거두었다. 그 후에도 독립군의 대원으로서 국경을 넘나들며 일제 경찰과 교전을 벌이는 등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1925년 2월 군자금 모집을 위해 경원군에 잠입하였다가 그 지역에 거주하는 훈장 한응진의 밀고에 의해 일제 경찰에게 발각되어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조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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