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인명사전 -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미상 ~ 1928. 12. 11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신민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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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1) 함경남도 함흥군(咸興郡) 수상면(水上面) 출신이다. 자료의 한계로 출생시기는 알 수 없다. 만주 지역에서 대한독립군단(大韓獨立軍團)과 신민부(新民府)에 가입하여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1922년 8월 북만주지역에 포진하고 있던 각 독립군단들은 통합운동을 전개하여 대한독립군단을 결성하였다. 그러나 중국 관헌의 지속적인 견제와 러시아 사회주의 세력과의 마찰 속에서 대한독립군단 간부들은 주변 독립운동세력을 통합하여 보다 크고 굳건한 독립운동 단체를 만들고자 하였다. 이에 대한독립군단 주요 간부들은 군단이 성립할 당시 참여하지 않았던 대한독립군정서의 김규식(金奎植)·조성환(曺成煥) 등과 힘을 합해 북만주를 근거지로 하는 여러 단체들을 통합하기 위한 논의를 전개하였고, 그 결과 1925년 3월 신민부가 결성되었다. 당시 대한독립군단과 신민부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대한독립군단은 1924년 12월 퉁빈현(同賓縣) 지방에 제5분단을 설치하여 세력 확장을 도모하는 동시에, 종래 휴교 상태였던 소수분(小綏芬) 소재의 영동(英東)중학교를 재흥하고자 노력하였는데, 이때 대한독립군단 단원으로서 문우천(文禹天)과 함께 각지를 다니며 영동중학교 재흥을 위한 자금 조달에 주력하였다. 한편 1925년 3월 15일 신민부 창립 당시 중앙조직의 체제는 행정 담당의 중앙집행위원회, 입법 담당의 참의원, 사법 기관으로서 검사원을 두어 삼권분립을 기초로 하였다. 그 중 중앙집행위원회는 민사·군사·외교·교육·실업 등 10개의 부서로 구성되었고, 군사 부분은 다시 별동대, 제1~5대 등을 두었다. 이때 신민부에 소속되어 제4대대장을 맡았다. 당시 신민부는 부속 무장대로 보안대를 두고 있었는데, 1925년 9월 사령관 박두희 휘하에서 보안대 부사령을 맡아 장성길·백낙천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1926년 6월 및 8월에는 신민부 보안대장으로 보안대원 조국태(趙國泰)·김강산(金剛山)·김기동(金基東) 등에게 의연금 모금을 지시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27년 2월 신민부의 주요 간부진이 중·일 합동대의 습격을 받고 체포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신민부는 단체의 존립을 두고 지금까지의 이념과 노선을 재고해야 하는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신민부 간부들의 의견은 둘로 나뉘었다. 한쪽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민정 위주의 활동을 유지하고 계속 교육과 산업을 발전시켜 재만한인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향상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다른 한쪽은 신민부를 독립군단으로 개편하여 적극적으로 무장투쟁으로 노선을 전환하자고 주장하였다. 결국 전자는 민정파, 후자는 군정파가 되어 서로 대립하다가 제각기 다른 조직을 편제하였다. 이때 김좌진(金佐鎭)·정신(鄭信)·황학수(黃學秀)·김종진(金宗鎭)·박영희(朴寧熙) 등과 함께 새롭게 재정비한 군정파에 속하여 보안제4대대장을 맡아서 활동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임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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