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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壽連

崔壽

1887. 9. 15 ~ 1933.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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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崔壽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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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부천(富川)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부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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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2011)

관련 사건

  • · 인천사건(군자금 모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1) 1887년 9월 15일 경기도 부천군(富川郡) 북도면(北島面) 신도리(信島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최성여(崔聖汝)와 함께 어부 일을 하였다. 1923년 경부터 윤응념(尹應念)의 권유를 받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윤응념은 한국의 독립을 희망하며 1920년경 중국 상하이(上海)의 임시정부와 연락을 취하였다. 당시 임시정부는 국내 각 지방과 긴밀한 연락을 유지하기 위해 연통제(聯通制)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었고, 이후 교통국을 신설하면서 연통제를 계승하도록 하였다. 이때 임시정부 교통국 참사로 임명된 윤응념은 국내로 잠입한 후 진남포와 황해도 송화군(松禾郡) 일대에 임시정부 교통총장 손정도(孫貞道)로부터 받은 『독립신문(獨立新聞)』과 잡지 『신한청년(新韓靑年)』 등을 배포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였다. 1923년 3월 2일부터 윤도중(尹度重)·윤응념·이동진(李東鎭)과 함께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그해 3월 24일에는 이동진·송중직(宋重稙)·윤응념과 함께 부천군 영종면(永宗面) 중산리의 김성대(金聖大)에게 임시정부 공채 1장을 보여주고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3월 28일에는 인천 만석정 해안에서 배를 타고 대부도(大阜島)로 들어가 군자금 모집에 나섰다. 이처럼 인천의 영종도·대부도·장봉도(長蜂島)·신불도(薪佛島) 등 여러 섬을 돌아다니며 독립자금을 모집하였다. 이때 섬을 쉽사리 오고갈 수 있도록 배를 차입하는 등 자금모집 활동의 원활한 진행을 위한 제반 준비를 맡았다. 이러한 군자금 모집 활동은 당시 ‘인천사건’으로 불리며 신문에 대서특필될 정도였다. 이처럼 윤응념·윤도중·이동진·송중직과 더불어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독립운동 자금 모집에 힘쓰다가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23년 9월 25일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과 강도죄로 징역 7년을 받았다. 이후 1928년 1월 15일 가출옥될 때까지 서대문형무소에서 4년 8개월 동안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최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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