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公勳
崔公勳1888. 11. 1 ~ 1955. 10. 26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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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88년 11월 1일 전라북도 옥구군(沃溝郡) 대야면(大野面) 지경리(地境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최재순(崔在順)이다. 1919년 3월 옥구군 만세시위에 참여하였고, 이후 1921년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옥구군 옥구 읍내 만세시위는 천도교인의 주도로 시작되었다. 1919년 2월 28일 천도교 간부인 인종익(印宗益)이 서울에서 독립선언서 2천 장을 가지고 전주로 내려와 김제(金堤)·옥구 등 10여 개의 전북 지역에 배포하였다. 이에 천도교 옥구교구를 중심으로 이유상(李有祥)·노춘만(盧春滿)·강성원(姜聖源) 등과 함께 회현면(澮縣面)과 대야면(大野面) 등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였으며, 만세운동을 결의하고 계획·추진하였다. 이들은 3월 6일 군산(群山) 장날로 거사일을 정하고, 옥구군 개정면(開井面) 구암리(龜岩里) 기독교회의 부속학교인 영명학교의 등사판을 이용해 독립선언서 7천 장을 등사하였다. 그러나 이 일로 영명학교 교사 박연세(朴淵世)·이두열(李斗悅) 등이 군산경찰서로 연행되자, 거사일을 하루 앞당겨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하였다. 3월 5일 옥구군 개정면 구암리 만세시위에 신관순(申官順)·신현성(申鉉成)·김종수(金鍾洙) 등과 함께 참여하였고, 현장에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3월 17일 광주지방법원 군산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후 1921년 3월 하순 대야면 지경리 천도교구 사무실에 근무하던 중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보낸 연락원 신정산(申正算)이 찾아왔다. 노춘만·김유중(金有重)·양문옥(梁文玉) 등과 함께 신정산으로부터 임시정부의 취지를 듣고 독립운동자금 출자를 권유받았다. 이후 독립정신의 고취와 독립운동자금 모집에 적극 협조하였다. 임시정부 명의로 군산과 옥구 지역 부호에게 군자금 제공을 압박하거나 독립운동에 나서지 않으면 곤란하다는 내용의 경고문(警告文)을 보내는 활동을 벌였다. 옥구군 대야면에 사는 부호에게는 독립에 관한 취지서와 동맹 서약서를 들이대며 “독립단에 100원을 기부하라. 언제든지 조선은 독립이 될 터이니 독립이 되는 때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관리로 임용하겠다”라고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922년부터 독립자금 모집 운동을 예의주시했던 전북경찰부는 1923년 1월 4일 관련자 색출에 나섰다. 이때 노춘만·김유중·양문옥 등과 함께 붙잡혔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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