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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신

高永信

1892. 10. 14 ~ 1921.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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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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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개천(价川)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개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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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92년 10월 14일 평안남도 개천군(价川郡) 외북면 송학리에서 태어났다. 성장 과정은 알 수 없다. 1919년 5월 중국 류허현(柳河縣) 가오산쯔(孤山子)에서 이상룡(李相龍)을 독판(督辦, 현재 장관직)으로 하여 조직된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서 의용군으로 활동하였다. 의용군 중에서 신광재(辛光在, 이명 辛容寬)를 대장으로 하여 채찬(蔡燦, 이명 白狂雲)·황영래(黃永來)·이병철(李炳哲) 등의 청년을 중심으로 암살대(暗殺隊)가 조직되었을 때 선발되었다. 암살대는 국내로 진입하여 친일파 및 밀정(密偵) 제거 등의 활동을 비롯하여 독립운동 자금 모집에도 나섰다. 1921년 7월 중국 펑톈성(奉天省) 지안현(輯安縣) 원즈거우(蚊子溝)에서 동지 김기현(金基鉉)과 함께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다가 일본 경찰에게 붙잡혔다. 같은 해 8월 7일 서로군정서 의용대에서는 교전 중 순국한 것으로 파악하고 추도회를 거행하였다. 또한, 1922년 8월 29일 자 『독립신문』과 같은 해 10월 5일 자 『신한민보』에서도 이와 관련하여 순국과 추도식에 관한 기사를 보도하였다. 그런데 다른 기록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행적이 확인된다. 김기현과 함께 밀정 이봉춘(李奉春) 일당에게 붙잡혀 지안감옥(輯安監獄)에 갇혀 있었다. 약 4개월의 고초를 겪고 지안현 지사(知事)인 중국인 성우운(成于雲)에게 넘겨졌는데, 그는 돈을 받고 독립운동가를 일본 경찰에 넘겨주던 사람이었다. 그에 의해 만포(滿浦) 일본 경찰에게 넘겨져 신의주법원에서 1년 형을 선고받았다. 신의주감옥에서 수감 생활을 마친 후 다시 만주로 복귀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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