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甲順
崔甲順1898. 5. 11 ~ 1990. 11. 22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조선독립애국부인회
- · 대한민국애국부인회
- · 근우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8년 5월 11일 함경남도 정평군(定平郡) 동선덕면(東宣德面) 연흥리(蓮興里)에서 최희용의 딸로 태어났다. 이명은 최숙자(崔淑子)이다. 대조선독립애국부인회(大朝鮮獨立愛國婦人會), 대한민국애국부인회(大韓民國愛國婦人會), 근우회(槿友會) 등에서 활동하였다.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1919년 만세운동 당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같은 학교를 제2회로 졸업하였다. 1919년 4월 대한청년외교단(大韓靑年外交團)의 지도를 받아 김원경(金元慶)·김희열(金熙烈)·김희옥(金熙玉) 등과 함께 비밀결사 대조선독립애국부인회를 조직하고 부회장에 선임되어 활동을 주도하였다. 부인회는 항일민족의식을 고취하고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던 중 대한청년외교단 총무 이병철(李秉澈)의 주선으로 같은 해 6월 오현주(吳玄洲)·오현관(吳玄觀)·이정숙(李貞淑) 등이 주도하여 조직한 혈성단애국부인회(血誠團愛國婦人會)와 통합하여 대한민국애국부인회가 결성되었다. 총재는 오현관, 회장은 오현주가 맡았으며, 이때 부회장에 선임되었다. 이후 기독교회·학교·병원 등을 이용해 조직을 전국적으로 확대하면서 회원들의 회비와 수예품 판매를 통해 독립운동자금을 수합하여 임시정부에 송부하였다. 같은 해 9월 김마리아(金瑪利亞)·황애시덕(黃愛施德)을 중심으로 결사부(決死部)·적십자부(赤十字部)를 신설하는 등 독립전쟁에 대비한 체제로 조직을 전환하고 본부와 지부를 통해 임시정부 국내 연통부(聯通府)와 대한적십자회(大韓赤十字會) 대한총지부(大韓總支部)의 활동을 대행하였다. 또한 독립운동자금 모집에 힘써 6천 원의 군자금을 임시정부에 송금하였다. 이후 민족협동전선의 일환으로 1927년 결성된 여성단체 근우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30년 12월 18일 근우회 중앙위원 확대회의에서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어 여성의 지위 향상과 항일운동에 진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전병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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