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柄燮
千柄燮1899. 12. 11 ~ 1949. 4. 7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배달청년회
- · 모도청년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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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3) 1899년 12월 11일 전라남도 완도군(莞島郡) 청산면(靑山面) 모도리(茅島里)에서 태어났다. 1923년 배달청년회(倍達靑年會)를 조직하였다. 1923년 9월 완도군 대모도(大茅島) 모서마을에서 이 부락에 거주하는 장석칠(張石七)·정두실(鄭斗實)·최창규(崔昌奎)·서재만(徐在萬) 등 청년 14명과 함께 개량서당(改良書堂)을 후원할 목적으로 배달청년회를 조직하였다. 이후 1925년 4월경 배달청년회를 모도청년회(茅島靑年會)로 개칭하고 책임자로 활동하였다. 이 단체는 선전부·교양부·조사부·회계부·서기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매월 12회씩 개량서당에서 회의를 열고 서당의 후원에 관하여 결의를 하였다. 그러나 실상은 서당의 후원보다는 새로운 사회를 갈망하는 창가를 배우거나, 사회문제와 정치문제에 대하여 토론하였다. 또한 조국 독립을 염원하며 애국가를 합창하고, 서로를 격려하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1924년 9월 사회주의를 선전하기 위해 방문한 박흥곤(朴興坤)으로부터 일본 사회주의자 사이에서 유행하는 ‘혁명가(革命歌)’라고 제목 붙은 창가(唱歌)를 습득하고 나서 커다란 사상적 변화가 있었다. 같은 해 12월 20일에는 민족의 독립을 위해 ‘조선독립만세’ 삼창을 하자고 제의하였다. 다른 회원들이 이에 찬동하여 만세 삼창을 하며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1925년 1월에는 우리 민족이 독립하기 위해서는 일본인과 친일(親日)적인 한국인에게 절대 동정을 보내지 말며, 이들과의 교섭을 단절해야 한다는 결의를 주도하였다. 또한 4월 4일에는 경찰 당국과 일본인을 살육할 목적으로 활동하며 절대적으로 조국을 위해 활동할 것 등을 결의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일이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동지들과 함께 붙잡혔다. 1926년 6월 29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미결구류일수 중 25일 본형 산입)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최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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