蔡燦元
蔡燦元1916. 8. 20 ~ 1978. 10. 9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결심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경산죽창의거(결심대 의거)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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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916년 8월 20일 경상북도 경산군(慶山郡) 남산면(南山面) 사월동(沙月洞)에서 태어났다. 일제 말기에는 인천찬원(仁川燦元)이라는 창씨명을 쓰기도 하였다. 일제시기 평범한 농민으로 살아가다가 태평양전쟁 말기 근로동원이 이어지는 등 전시 강제동원이 계속되자, 이에 반대하기 위해 경산지역 청년들과 대왕산(大王山)에 들어가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44년 7월 남산면 일대 청년 등 28명과 함께 일제의 강제동원에 저항하기 위해 대왕산에 숨어들어간 후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때 죽창으로 무장하고 일본군에 맞섰기 때문에 이들의 의거를 ‘대왕산죽창의거’라고도 부른다. 같은 해 7월 중 세 차례에 걸쳐 항일투쟁을 논의한 이들은 제3차 회의에서 경사가 가파르고 옛 성터가 잔존한 대왕산을 최적지로 선정하였다. 그리고 다음 날인 7월 26일 입산을 시작해 요새를 구축하고 조직을 정비하였다. 먼저 이들은 결사항전을 결의하며 조직의 이름을 결심대(決心隊)라 정하고, 3개 소대와 헌병 등으로 조직을 편성하였다. 대장은 안창률(安昌律)이 맡았으며, 이때 일반 소대에 배속되었다. 남산면사무소에서 근무한 박재오(朴在千)·김인봉(金仁鳳) 등을 통해 전황을 인지한 이들은 일제 패망을 예견하며 당시 신축 중이던 주재소 파괴를 계획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정보를 입수한 일제 경찰의 검거가 시작되었다. 결심대원들과 함께 대왕산 정상에서 죽창을 들고 돌을 던지며 일제 군경에게 저항하였다. 8월 4일에는 인근에 위치한 용산(龍山)으로 근거지를 옮기고 대원들과 함께 계속해서 항거하였다. 이처럼 저항을 지속하였으나, 8월 9~10일 식량 확보를 위해 하산하였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44년 10월 4일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다가 광복을 맞이해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황선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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