朱斗基
朱斗基1907. 10. 22 ~ 1963. 2. 1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조선농민총동맹 정평농민동맹
- · 조선농민총동맹 정평농민조합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함남 정평농민조합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907년 10월 22일 함경남도 정평군(定平郡) 춘류면(春柳面) 화동리(禾洞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주의돌(朱義突)이다. 어릴 때 서당에서 한문을 공부하였다. 1928년 초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早稻田)대학 고등학원에서 근대 학문을 접할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귀국하여 본격적인 항일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귀국한 이후에는 고향인 정평에서 농업에 종사하는 한편 조선농민총동맹 정평농민동맹(定平農民同盟)에 가입하여 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정평농민동맹은 1927년 설립된 정평농우회(定平農友會)가 1928년 2월 개편된 것으로 농민 대중의 정치적 권리 향상과 경제적 이익 옹호를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특히 일제 강점기 한국 농민들의 일상을 가장 크게 괴롭혔던 소작료 문제의 해결을 위해 소작료 감면 및 소작료율 제한, 소작권 이동반대 등을 내걸고 투쟁하였다. 그러나 정평농민동맹의 활동이 일제의 탄압에 직면하자 동맹은 1930년 6월 정평농민조합(定平農民組合)으로 재편한 뒤 좀 더 내밀한 활동을 전개하게 되었다. 개편된 정평농민조합에서도 집행위원으로 선임되어 더욱 활발히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특히 1930년 7월 일본 제국주의 식민 지배에 맞서 전 조선의 노동자·빈농(貧農)의 궐기를 촉구하는 격문 200부를 직접 작성·등사하여 살포하기도 하였다. 이 격문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기만(欺瞞)으로부터 탈피하여 역사적 필연의 과정인 미래 사회를 창설하고자 분투하자”라고 하면서 노동자·빈농의 투쟁을 통한 노동자 해방과 식민지 해방을 주장하였다. 정평농민조합에서 활동하던 1930년 12월경 정평경찰서에 붙잡혔고 이후 함흥형무소에 구금된 채 재판을 받았다. 함흥형무소 구금 중이던 1931년 12월 25일 생명이 위독하여 잠시 보석(保釋)되었다. 1932년 12월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5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1933년 12월 1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4년을 받았다. 서대문형무소와 정평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다가, 1936년 3월 10일 형량을 모두 채우고 풀려났다. 1937년 4월 정평농조 일반조직부 책임자로 하였고, 이후 농민야학 활동을 전개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신주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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