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晋圭
崔晋圭1888. 12. 2 ~ 1955. 8. 1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1919년 강릉군 강릉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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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5) 1888년 12월 2일 강원도 강릉군(江陵郡) 강릉면(江陵面) 초당리(草堂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4일 강원도 강릉군 강릉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강릉에서는 4월 2일 강릉면 읍내 장터에서 감리교회 목사 안경록(安慶祿)의 주도로 강릉군에서 최초로 만세시위가 거행되었다. 하지만 이 만세시위는 하루 전인 4월 1일 만세시위에 계획이 발각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지 못하였다. 이후 같은 마을의 최이집(崔頤集)과 함께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강릉면 초당리에서는 매년 인근의 송정리(松亭里)·포남리(浦南里)·옥천리(玉川里) 마을 농민들과 함께 남대천의 보(洑)를 수리하는 일을 하였다. 이는 한 해 농사가 달려 있어 4개 마을의 농민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연중행사의 하나였다. 이때는 일제의 감시를 받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어 이 날을 거사일로 정하였다. 4월 4일 최이집과 함께 남대천 보 수리에 참여한 후, 공사가 끝나고 모두 귀가할 무렵 참여자들에게 만세시위를 펼치자고 권유하였다. 이러한 권유에 최영방(崔永邦)·박장실(朴章實) 등이 적극적으로 동참하였고, 많은 농민들도 호응하였다. 최이집과 함께 선두에서 200여 명의 농민들을 이끌고 만세시위를 펼쳤다. 그러자 손에 삽·괭이·가래 등을 들은 농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하지만 이러한 소식을 접한 일제 군경이 출동하여 가혹하게 만세시위를 진압하여 20여 명이 부상당하였다. 결국 다음날까지 이어진 주도자 검거 과정에서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4월 10일 함흥지방법원 강릉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을 받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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