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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周煥

崔周煥

1882. 2. 18 ~ 1950.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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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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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시흥(始興)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시흥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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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시흥군 서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2년 2월 18일 경기도 시흥군(始興郡) 서면(西面) 소하리(所下里, 현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28일 시흥군 서면에 위치한 노온사경찰관주재소(老溫寺警察官駐在所)를 공격하는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3월 28일 시흥군 서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는 전날인 3월 27일 노온사경찰관주재소 앞에서 만세를 외치던 이정석(李貞石)이 일제 순사 아카마쓰(赤松)와 순사보 두 명에게 연행된 사건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일로 배재고등보통학교(培材高等普通學校) 학생 최호천(崔浩天)·윤의병(尹宜炳)과 농부 이종원(李宗遠) 등은 이정석을 구출하기로 결의하고, 서면 일대에서 주재소로 행진할 사람들을 모집하였다. 이때 뜻을 같이 하기로 결심하고 참여하였다. 3월 28일 오후 11시경 최호천·윤의병의 주도로 서면 주민 200여 명이 주재소로 행진하였다. 이때 김거봉(金巨奉)·류지호(柳志浩) 등과 함께 선두에서 만세를 연호하였고, 돌과 몽둥이를 든 사람들과 함께 주재소를 에워싸고 이정석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서면 일대에서 조선인 순사보 최우창(崔禹昌)·김정환(金定煥) 등의 소재를 수색하고 온 최호천과 윤의병이 재차 주재소를 포위하고 실내에 숨어 있던 아카마쓰로부터 날이 밝으면 영등포로 가서 신병취하를 청원하겠노라는 약조를 받은 후, 주재소와 보통학교 뒤편에서 만세를 연호하였다. 하지만 다음날인 3월 29일 만세시위 가담자 색출에 나선 일제 순사들의 가택 수색으로 붙잡힌 후, 모진 고문을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5월 2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며 항소하였고, 같은 해 7월 3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다시 징역 6월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조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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