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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周憶

崔周憶

1866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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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崔周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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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중화(中和)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중화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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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0)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0) 평안남도 중화군(中和郡) 상원면(祥原面) 장항리(獐項里)에서 태어났다. 판결문에 따르면 1919년 당시 54세이므로 1866년생으로 추정된다. 중화군의 천도교구장(天道敎區長)이다. 1919년 3월 3일 상경하여 고종 장례식에 참가한 후 귀가하던 중, 3월 4일 황주(黃州)에서 하차하여 시가에 들어가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황주에서는 3월 2일 2시경 천도교인 수백 명이 황주면 남천리(南川里) 시장에서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만세시위를 벌였다. 시가행진에 나선 시위대가 황주경찰서 구내로 들어가서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는 등 시위를 벌였다. 3월 2일의 황주경찰서를 습격한 만세시위대의 배후로 지목되어 붙잡힌 것이다. 3월 8일 평양지방법원으로 압송되는 과정에서 한국인 순사를 발견하고 “너는 몸을 일본에 팔았기 때문에 우리들을 이렇게 엄중하게 취조를 하느냐”고 꾸짖었으며, 평양역 앞에 이르자 함께 압송되어 가던 다른 2, 3명의 사람들과 다시 독립만세를 불렀다. 또한 지방법원 구내에 도착하자, 일본인 순사를 보고 “너희 일본 경찰 관리여, 인민이 다만 1개의 시계를 절취했다고 가정해 보자. 너희들은 즉시 절도죄로서 감옥으로 보낼 것이 아니냐. 그런데 너희 일본인들은 조선 삼천리에 이르는 강산을 절취한 대적이 아니냐. 우리들은 지금은 이렇게 너희들의 구속을 받고 있다만, 금후 3월 중에는 조선은 완전히 독립되어 너희들 전부를 추방할 것이다. 그 경우 이 재판소 등 광대한 건축물을 남기고 떠나는 것을 유감으로 생각할 것이다.”하고 비난하였다.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19년 5월 28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재차 상고하였지만, 그해 7월 3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면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이후 천도교 활동을 활발히 하여 1921년 10월에는 천도교 평양 의정원(議正員)으로 선출되기도 하였다. 1922년 7월 평양에서 평남노동조합을 조직하는 데 참여하였고 강연회를 기획하기도 하는 등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을 이어 나갔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윤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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