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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文浩

崔文浩

1885. 8. 10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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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崔文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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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창성(昌城)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창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2)

관련 사건

  • · 1919년 진남포부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2) 1885년 8월 10일 평안북도 창성군(昌城郡) 부내면(府內面) 묘동(廟洞)에서 태어났다. 활동 당시에는 평안남도 진남포부(鎭南浦府) 비석리(碑石里)에 거주하였다. 1919년 3월 1일 진남포부 일대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진남포부의 만세운동은 민족대표 33인이었던 이승훈(李昇薰)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이승훈은 105인 사건으로 함께 투옥되었던 동지 임치정(林蚩正)이 진남포에서 광무소(鑛務所)를 운영하고 있어 자주 왕래하였다. 서울과 평양(平壤)에서의 만세운동 계획에 참여하던 이승훈은 임치정에게 연락을 취하여 진남포부의 만세시위 계획을 권유하였다. 진남포의 만세시위는 삼숭학교장 홍기황(洪基璜)과 노윤길(盧允吉) 등 감리교 인사들을 중심으로 계획되었다. 홍기황은 2월 18일경 평양(平壤) 남산현교회 목사 신홍식(申洪植)으로부터 조선독립선언이 준비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진남포로 돌아온 홍기황은 노윤길 등과 함께 진남포에서도 독립선언을 준비하기로 하고, 서울·평양 등과 같이 3월 1일을 거사일로 정하였다. 노윤길은 2월 28일 평양으로 가서 독립선언서 500장을 전달 받은 후, 이를 가지고 3월 1일 아침 진남포로 돌아왔다. 3월 1일 오후 2시경 진남포부 신흥리(新興里)의 감리교회 광장 앞에는 고종의 봉도식(奉悼式)에 참여하기 위해 약 500명이 결집해 있었다. 간단하게 봉도식을 끝낸 시위대와 함께 곧바로 만세시위를 시작하였고, 미리 준비한 ‘대한독립’ 문구가 적힌 깃발을 앞세우고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외쳤다. 그리고 큰 시가지로 이동하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뒤 다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어서 시위대와 함께 진남포경찰서 앞으로 이동하여 독립만세를 외쳤고, 밤 늦게까지 진남포부 여러 곳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7월 10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출판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아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윤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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