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晩甫
崔晩甫1879. 5. 8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09)
관련 사건
- · 1919년 안성군 원곡면
- · 양성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9) 1879년 5월 8일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원곡면(元谷面) 지문리(芝文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최명진(崔明鎭)이고, 한자를 달리한 최만보(崔萬甫)를 쓰기도 하였다.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4월 1일 안성군 원곡면·양성면(陽城面)에서 거행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은 곧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이러한 소식을 접한 안성군에서도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특히 4월 1일 밤에 열린 만세시위는 외가천리에 사는 이근수(李根洙), 내가천리(內加川里)에 거주하는 이덕순(李德順)·최은식(崔殷植), 원곡면 칠곡리(七谷里)에 거주하는 이유석(李裕奭)·홍창섭(洪昌燮) 등이 주도하였다. 이때 지문리에 거주하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 원곡면사무소로 가서 시위대에 합류하였다. 그리고 원곡면사무소에 모여 있던 1,000여 명과 함께 횃불과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성은고개를 넘어 양성면으로 이동하였다. 밤 9시 50분경 원곡면 시위대와 함께 양성주재소에 도착하였다. 그곳에는 양성면 시위대가 만세시위를 마치고 자진해서 해산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원곡면 시위대의 주도한 인사들로부터 함께 만세시위를 진행하자는 제안을 받은 양성면 시위대가 곧바로 찬성하며 합류하였다. 2,000여 명으로 불어난 시위대와 함께 양성주재소 앞에서 투석전을 전개하였다. 시위대 가운데 최관길(崔寬吉)·최은식·이회봉·김중식(金重植)·김순서(金順西)·정인규(鄭寅圭)·이규완(李圭完)·오윤선·오세학(吳世鶴)·고인재(高麟在)·이양섭(李陽燮) 등이 양성면사무소 내부로 진입을 시도하였다. 결국 주재소 진입에 성공하여 내부의 집기와 서류를 파괴하고 주재소를 방화하였다. 시위대 일부는 양성우편소로 몰려가서 전신주 3개를 무너뜨리고 전화기를 비롯한 각종 집기를 파손시켰다. 이를 통해 시위대는 양성면 일대의 통신을 두절시키고자 하였다. 그리고 안성에서 양성면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 다리를 파괴하였다. 4월 2일 새벽 4시경 원곡면 시위대와 함께 원곡면으로 돌아왔다. 이어서 원곡면 시위대와 더불어 원곡면사무소의 숙직실을 불태웠고, 면사무소의 집기 등을 훼손하였다. 4월 3일 일제는 원곡면·양성면에서 전개된 격렬한 만세시위 관련자를 조사·색출하기 위하여 병력을 파견하였다. 이 조사과정에서 만세시위에 참여한 사실이 밝혀져 안성경찰서로 연행되어 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내란죄 적용 문제를 두고 오랜 조사와 공판이 이어졌다. 1920년 3월 22일 고등법원에서 내란죄를 적용하지 않기로 하고 경성지방법원으로 관할 재판소를 지정받았다. 같은 해 8월 1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변호사들의 사법 절차 문제 지적 법정투쟁의 결과 공소 불수리 처분을 받았다. 1921년 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건조물 소훼, 소요 등으로 징역 2년(구류일수 중 500일 본형 산입)을 받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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