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基哲
崔基哲미상 ~ 1919. 4. 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8)
관련 사건
- · 1919년 온성군 영충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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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8) 함경북도 온성군(穩城郡) 출신이다. 자료의 한계로 출생시기는 알 수 없다. 1919년 4월 4일 온성군 영충면(永忠面) 북창평동(北蒼坪洞)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이 전국으로 확대되던 중 영충면 북창평동에 거주하는 천도교도 전창우(全昌禹)는 독립선언서를 입수한 후, 3월 30일 영충면 회덕동(懷德洞)에 사는 김창욱(金昌旭)을 방문하고 독립선언서를 회람하게 하였고, 영충면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하였다. 이어서 전창우는 천도교도 안병선(安秉線)을 만나 4월 4일 영충면 회덕동 회동교(懷洞橋) 부근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협의하였다. 4월 1일 전창우·김창욱 등은 거사에 사용할 대형 태극기 1개와 소형 태극기 35개를 제작하였고, 박상원(朴尙元)·이근수(李根秀) 등에게 만세시위 참여를 권유하였다. 4월 4일 오전 10시 회동교 부근에서 전창우·김창욱·안병선이 주도하는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천도교도를 포함한 150여 명의 시위대와 함께 김창욱의 연설을 들은 후, 소형 태극기를 받아들고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어서 시위대와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북창평동을 향해 출발하였고, 북창평헌병주재소를 지나 오전 11시 30분경 영충면사무소에 도착하였다. 그러자 헌병주재소 일제 헌병들이 시위대를 향하여 해산을 명령하였다. 이에 맞서 시위대와 함께 헌병주재소와 면사무소를 향하여 투석전을 전개하고 막대를 휘두르면서 계속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러자 일제 헌병들이 시위대를 향하여 발포하기 시작하였고, 결국 이 과정에서 총격에 맞아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8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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