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光仁
崔光仁1885. 11. 7 ~ 1926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0)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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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0) 1885년 11월 7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장곡면(長谷面) 화계리(花溪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최덕화(崔德化)이다. 1919년 4월 4·7·8일 홍성군 장곡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홍성군에서는 화계리·광성리(廣城里)·가송리(佳松里)의 주민들을 중심으로 4월 초부터 여러 차례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1919년 4월 4일 윤형중(尹衡重)·윤익중(尹益重)·윤낙중(尹樂重) 형제가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로부터 영향을 받아 4월 7~8일에는 가송리의 김동하(金東河)를 중심으로 김용제(金用濟)·김차제(金次濟)·김동완(金東完)·김용숙(金容肅)·이화춘(李化春)·한상철(韓相喆) 등이 주도하여 면사무소를 습격하는 격렬한 시위가 전개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4월 4일 장곡면에서는 윤형중과 윤익중 등의 권유를 받고 광성리와 신풍리(新豊里) 주민 100여 명과 함께 매봉산에 올라 횃불을 올리고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로부터 3일 후인 4월 7일 김동하·김차제 등에게 마을 앞산에서 주민 회합이 열릴 것이라는 연락을 받고 참석하였다. 이 자리에서 “조선의 독립을 위해 면사무소로 가서 만세운동을 전개할 생각이니 동참하라”는 김차제 등의 호소에 동의하여 마을 주민들과 즉시 시위대열을 형성하였다. 김동하의 지휘 하에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면사무소 소재지인 도산리(道山里)로 행진하는 도중 광성리와 가송리의 주민들도 합류하였다. 이들과 함께 면사무소의 뒷산인 응봉산(鷹峰山)에 올라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어 더욱 굳은 결의를 다지고 북소리에 맞춰 ‘조선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면사무소로 나아갔다. 면사무소 앞에 도착한 후, 공격하라는 김동하의 지휘에 따라 마을 주민들과 함께 면사무소 공격에 동참하여 돌과 몽둥이 등으로 면사무소의 각종 시설, 기물 등을 파괴하였다. 다음날인 8일 밤에도 오후 11시 경부터 주민 60여 명과 함께 도산리에 모여 면사무소에 대한 공격을 계속하였다. 시위를 해산시키기 위해 출동한 일제 경찰에 붙잡혀서 법원으로 송치되었고, 이후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5월 30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아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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