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桂禹
崔桂禹1880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1)
관련 사건
- · 1919년 김해군 김해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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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1) 경상남도 김해군(金海郡) 김해면(金海面) 마마리(馬麻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19년 당시 40세이므로 1880년생으로 추정된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4월 2일 김해군 김해면 장터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김해 지역 최초의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30일에 일어났으며,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학생 배동석(裵東奭)이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내려온 것에서 시작되었다. 배동석은 임학찬(任學瓚)·배덕수(裵德秀)·송상진(宋相振) 등과 함께 3월 30일 밤 김해읍 중앙거리에서 독립만세를 불렀으며, 이때 출동한 일제 헌병에 의해 주도 인물 몇 명이 붙잡혔다. 이날 검거를 피한 송상진과 허병(許炳)은 4월 2일 김해읍 장날을 거사일로 정하고 다시 동지들을 규합하였다. 허병은 3월 31일 자택에서 나무판에 태극기를 새기고 광목으로 시위 때 나누어 줄 수십 장의 태극기를 찍어 준비하였다. 4월 2일 김해군 김해면 장터에서 오후 3시경 허병에게 태극기를 전달받았다. 이를 다시 송세탁(宋世卓)·김석암(金石岩)·최덕관(崔德瓘)·조병중(曺秉重)·송상진에게 나누어 군중에게 배부하도록 하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에 앞장섰다. 시장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인 오후 4시경 60여 명의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면서 시장 곳곳에서 만세시위를 벌였다. 김해헌병분견소에서 출동한 일제 헌병이 재향군인과 상인까지 동원하여 무력으로 시위대를 진압하면서 부상자가 속출하였다. 이때 일제 헌병에 의해 붙잡혔다. 1919년 5월 3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5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그해 5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형량이 지나치게 가볍다는 검사의 항소가 이유 있다고 판단되어, 원판결이 취소되고 징역 8월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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