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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卿鉉

崔卿鉉

1864. 8. 3 ~ 1927.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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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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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대구(大邱)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대구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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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2)

관련 사건

  • · 1919년 고령군 쌍동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2) 1864년 8월 3일 경상북도 대구(大邱)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에 고령군(高靈郡) 쌍동면(雙洞面) 매촌동(梅村洞, 현 고령군 쌍림면 매촌리)에 거주하였으며, 농업에 종사하였다. 또한 북장로파(北長老派) 교회 영수(領袖)로 활동하였다. 3월 고령군 쌍동면 일대에서 만세시위를 계획·권유하였다. 1919년 3월 말 조선 내 각지의 만세운동 소식을 접하고, 이를 주변에 전달하였다. 동시에 고령군에서도 ‘독립만세’를 외쳐야 한다고 종용하였다. 3월 24일 오후 6시경 매촌동 오성렬(吳聖烈)의 거동서당(居洞書堂)에서 서병직(徐丙稷)에게 대구(大邱)·합천(陜川)·초계(草溪) 등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을 전하였다. 동시에 양반과 유생이 적지 않은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방관하는 것은 체면의 문제라고 설득하였다. 3월 27일 쌍동면 신촌동(新村洞)에 거주하는 최홍석(崔洪錫)과 만나 만세시위를 권유하였다. 대구·합천 등의 만세시위를 본받아 독립 만세를 외치자고 하였다. 3월 28일에는 신촌동에 사는 전하성(全夏誠)을 방문하였다. 전하성에게 각지의 시위 소식을 전하며, 이는 시운(時運)이라고 만세시위 참여를 권유하였다. 고령경찰서 소속 조선인 순사보(巡査補)에게도 독립운동에 함께할 것을 권유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붙잡혔다. 1919년 4월 7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10월을 받았다. 이에 항소하였고, 담당 검사도 부대항소를 신청하였다. 그해 4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존 판결의 형량이 가볍다는 이유를 받아들여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재차 상고하였다. 최홍석·서병직·전하성에게 만세시위를 권하였으나 실제로 행하지 않았다는 점, 천운(天運)에 따라 독립 만세를 부르고 축하하였는데 재앙을 받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는 등의 주장을 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 5월 29일 고등법원에서 기각하여 형량이 확정되었다. 이후 경성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경북 고령 출신의 최향현(崔鄕鉉)과 동일인으로 추정된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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